‘대프리카’에 나타난 쿨루프 특공대, “폭염 해결하고 일자리 창출까지”

실내 온도 4℃까지 떨어뜨릴 수 있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캠페인에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까지
서울, 부산은 주거취약계층 대상 사업 실시
대구는 공공기관 8곳 시행 후, 민간 확대 계획 검토 중

17:37

“비 오기 전에 얼른 칠하러 가요”

중화요리로 점심을 먹고 나온 중학교 3학년 나규명(15), 구준모(15), 이준희(15) 씨와 대학생 송명수(28) 씨는 흰색 페인트 통과 롤러를 들고 대구시 동구 율하동 한 골목으로 향했다. 하얀 페인트 자국이 옷가지와 얼굴에도 묻어 있는 이들은 ‘대프리카’를 구하기 위해 나선 ‘쿨루푸(Cool-roofs) 특공대’다.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주최하고 북성로허브, 십년후연구소가 함께한 (준)대구쿨루프사업단은 8일부터 10일간 대구시 동구, 서구, 중구, 수성구의 옥상 10곳을 하얗게 만드는 작전에 나섰다.(9일부터 대구 곳곳에 비가 내리면서 작업 완료는 더 늦어졌다.)

▲’쿨루프 특공대’원들이 대구시 동구 율하동 한 주택가 옥상에서 쿨루푸 시공을 하고 있다.

쿨루프는 건물 옥상 표면에 특수 페인트(주로 흰색)를 칠해 태양 광선을 80% 이상 반사해 열을 낮추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작업을 말한다. 흔히 볼 수 있는 녹색 우레탄 옥상이나 콘크리트 지붕은 열반사율이 낮다. 이런 옥상 표면에 쿨루프 작업을 마치면 실내 온도를 4℃가량 낮출 수 있다.

‘대프리카’를 구하러 나타난 쿨루프 특공대
실내 온도 4℃까지 떨어뜨릴 수 있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캠페인에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까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캠페인”

9일 낮에 만난 특공대원들에게 물었다. 이 무더운 여름에 자진해서 뜨거운 옥상에서 페인트칠에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친구와 함께 쿨루프 특공대에 동참한 나규명(15) 씨는 “봉사활동 시간도 다 채웠고, 뭔가 뜻깊은 일을 해보고 싶었던 차에 재미있을 것 같아 신청했다”며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다”라고 웃었다.

롤러만 밀면 끝날 것 같아 보였지만, 다가 아니었다. 옥상 표면을 깨끗하게 닦아야 했고, 갈라진 부분이 있으면 추가 작업이 필요했다. 한번 쓰윽 지나가면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흡수열을 방사하는 페인트(하도)를 칠하고 마른 다음 태양열을 방사하는 페인트(상도)를 칠해야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힘들었지만, 쿨루프 특공대원들은 무더워지는 날씨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할 기회가 생겨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용석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은 “주거취약계층과 에너지자립주택 참여 가구, 사회적 협동조합 등 10곳을 선정했다. 쿨루프 작업을 하면 실내온도는 최소 2℃ 이상 내려간다. 에어컨 온도를 1℃ 올리면 7%의 전력 절감 효과가 있다”며 “기후변화로 나타나는 무더위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면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도 있는 효과적인 일이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용석(오른쪽)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이 쿨루프 시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이번 쿨루프 특공대를 ‘액션형 캠페인’으로 이름 붙였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절감과 더불어 일자리 창출까지 계획하고 있다. 올해를 시작으로 2018년에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서 쿨루프 시공을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어 사회적 기업도 육성할 계획이다. 2019년에는 교육과 시공까지 책임지는 쿨루프 전문 사회적 기업을 탄생시킬 그림까지 그렸다.

전충훈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운영위원은 “쿨루프 효과를 체험해보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일자리 창출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캠페인을 진행하니 대구시에서도 연락이 왔다. 가치, 기술, 철학까지 교육하면서 자체적인 자격증도 발급하고, 노숙인 등 일자리가 없는 분들 가운데 고용의지가 있는 분들이 사업에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쿨루프 효과는 이미 검증돼, 옥상녹화보다 저렴한 비용
서울시, 부산시는 저소득층 중심으로 주택 쿨루프 사업 벌여

2015년 8월 대구경북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대경CEO브리핑 441호, ‘대구 폭염, 도시열섬 저감으로 줄일 수 있다’)에 따르면 대구는 시가지 대부분 지역에서 도시열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구시가 추진해온 도시 녹화사업은 가로수 식재와 옥상녹화에만 국한돼 있고, 폭염과 직결되는 사업은 임시적인 대책으로만 이뤄졌다.

대경연구원은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는 그린루프(Green roof) 사업과 더불어 쿨루프를 적극 활용해 대구열섬현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앞서 대구지역 연구자들도 쿨루프가 속칭 가성비(투자 대비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경북대 지리학과 김준우, 엄정섭, 2012, 설비 투자비용의 관점에서 쿨루프와 옥상녹화의 비교 평가:경북대학교 캠퍼스 사례를 중심으로)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건축물 수명주기인 40년을 기준으로 옥상녹화(그린루프)가 쿨루프보다 4.95배 값비산 투자가 필요하다고 나타났다. 경북대 건물 1곳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는 한계와 옥상녹화가 도심 녹지 공간과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쿨루프는 저렴한 설치비용과 적용이 쉬워 도심의 작은 건물에 더 용이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 뉴욕시는 2009년 지붕 온도가 높은 지역을 시작으로 쿨루프 시범사업을 벌였고, 2010년부터 도심 전체를 대상으로 쿨루프 시공에 나섰다. 한국에서도 서울시가 2014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주거취약계층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매년 쿨루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부산시도 2016년 시범사업 이후 올해에는 저소득층 110가구를 대상으로 쿨루프 사업을 시행했다.

대구시, 올해 공공기관 8곳 대상으로 쿨루프
민간으로 확대한다는 취지는 공감하나, 아직 구체적 계획 못 세워 

더위라면 1등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대구는 어떨까. 대구시도 지난해 시설안전관리사업소 옥상에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실내온도는 이전보다 최대 3℃까지 떨어졌다. 효과가 있었던 만큼 올해는 예산(1억8천4백만 원)을 편성해 공공기관 8곳(중부소방서, 북부소방서, 서부소방서, 수성소방서, 달성소방서, 시설안전관리사업소, 대구사격장, 보건환경연구원)에 쿨루프 시공을 완료했다.

▲대구시는 시설안전관리사업소에 쿨루프 시범사업을 했다. 위는 시공한 옥상이고, 아래는 표면온도 사진이다. [사진=대구시 제공]

대구시 재난대응과 관계자는 “대구시가 관리하는 시설이라 먼저 추진할 수 있었다. 민간에 대해서는 검토 중인 상황”이라며 “민간으로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는 있지만,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서는 구상만 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서울, 부산처럼 주거취약계층·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우선 지원 계획은 아직까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재난대응과 관계자는 “대상과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 쿨루프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대구시 직접 시행 또는 위탁 등)까지 따져봐야 할 게 많다. 단기적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민간단체에서 첫 발을 뗀 쿨루프는 앞으로 대구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 따르면 20명 목표인 쿨루프특공대원 모집에 60명이 넘는 시민이 신청했다.

오용석 사무처장은 “쿨루프뿐만 아니라, 더위·추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이 에너지 효율 개선을 통해 쾌적한 삶과 더불어 습관의 변화를 통한 절약까지 나아가면 좋겠다. 관에서는 지역에너지센터를 설립해 시민들이 쉽게 찾아가 스스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