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고 학생들이 교내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만든 이유

학생들의 지지와 공공급식소 설치···갈등 해소의 큰 도움
학생들이 길고양이 돌봄으로 배우는 것은? 
달서구의회서 '동물복지 증진 토론회' 참석도
"동물 보호 위해 더 많이 나서주세요" 요구도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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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대구 달서구 경원고에 길고양이 공공급식소가 마련됐다. 교내에 길고양이 돌봄 문제를 두고 갈등이 일자, 이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대구 교내에 길고양이 공공급식소가 마련된 건 현재까지 경원고가 유일하다. 급식소를 중심으로 한 학생 동아리도 만들어졌다. 동아리는 길고양이 돌봄에서 멈추지 않고, 동물권에 대한 고민과 환경,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19년 여름 경원고 교사 성명희 씨는 교내에서 길고양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보고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길고양이 밥 주기가 그렇듯, 학교 안에서도 갈등이 일었다. 성 씨는 “고양이 밥 주는 걸 좋지 않게 생각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위생 문제도 있고 굳이 왜 챙겨 주냐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며 “교장 선생님은 반대하는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고 전했다.

갈등은 의외의 지점에서 풀렸다. 학생들 중 일부가 길고양이 돌봄을 지지하고 나섰고, 공공급식소 설치도 제안했다. 2021년 반 학생 2명이 성 씨를 찾아와 함께 길고양이를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3 수험생이었던 학생들은 틈틈이 길고양이 돌보고, 성 씨에게 달서구 공공급식소 제도도 소개했다. 학생들은 직접 구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도움을 요청했고, 달서구 공무원들의 적극 행정에 힘입어 급식소가 교내에 들어섰다.

성 씨는 “저는 생각도 못했는데, 학생들이 오히려 저보다 더 멀리 생각을 하더라. 갈등을 줄이고 제대로 고양이를 돌보는 방법을 고민했다”며 “학생들은 달서구에 공공급식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글을 썼고, 고양이 보호 활동에 대한 의견도 냈다”고 설명했다.

‘달서구청’ 마크가 찍힌 공공급식소가 학교에 설치되자 부정적 목소리는 들어갔다. 성 교사는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거나 하면서 은근히 학교 자랑을 하는 선생님들도 계신다”며 “학생들과 함께 돌봄 활동을 하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 대구 달서구에 있는 경원고등학교에 설치된 길고양이 공공급식소. 대구 내 급식소 가운데 고등학교에 설치된 공공급식소는 이곳이 유일하다. (사진=애니멀럽)

학생들의 지지와 공공급식소 설치···갈등 해소의 큰 도움
학생들이 길고양이 돌봄으로 배우는 것은? 

학생 몇몇과 소소하게 하던 활동은 2022년부터 정규동아리가 되어 학생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애니멀럽’으로 이름 붙여진 동아리는 길고양이 돌봄 외에도 동물권에 대해 고민하고,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나서기로 했다.

최찬종 동아리 부장을 포함해 총 12명 모두는 1학년이다. 학생들은 매주 조를 짜서 돌아가면서 고양이 급식소 주변을 청소하고, 주로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고양이 밥을 챙겨준다. 시간이 날 때 들러 물을 갈아주거나 필요한 것은 없는 지 학교 안에서 살고 있는 길고양이를 보살핀다. 동아리 소속은 아니지만 함께 고양이 돌봄 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9명이 있다.

막연히 동물을 좋아해 동아리에 가입했던 친구들은 그동안 ‘보이지 않던’ 길고양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소하지만 그게 ‘돌봄’이라는 것도 새삼 배웠다. 부원인 석지호 씨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나서 길에서 고양이가 눈에 더 자주 보인다. 길고양이집을 청소하고, 물을 주고 밥을 주는 걸 해봤기 때문에 하굣길에 보이는 길고양이 급식소에서도 그렇게 해봤다”고 말했다. 동아리 부원 대부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공감했다.

▲ 경원고 ‘애니멀럽’ 회원들과 선생님 등이 고양이 급식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학생들은 대구고양이보호연대로부터 길고양이 사료를 기부받았다. (사진=달서구의회)

박기형 씨는 “처음엔 밥을 줘도 낯 가리는 고양이에 서운한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 조차 인간 중심적 생각 같다. 이젠 고양이의 입장, 마음도 헤아리게 된다”고도 말했다. 학생들은 노란색 치즈 무늬를 가진 ‘할아버지’ 쏘미, 턱시도를 입은 청소년 고양이 ‘까미’ 등이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동아리 지도교사 김서유 씨는 “정규교육 과정에 동물 보호나, 동물권에 대해서 특별히 수업이 없다. 동아리로나마 동물 보호와 돌봄 활동을 해보는 것은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라며 “저 또한 18살 노견을 보내고 펫로스(petloss)로 학교를 그만두는 걸 고민할 정도로 허무감이 컸는데, 학생들과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찾고있다”고 덧붙였다.

성 씨는 길고양이 돌봄 활동의 교육적 효과로, “학생들에게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길러지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특히 “단순히 동물을 소중히 대하는 마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보다 약한 존재, 약자감수성을 길러주는 것이 앞으로의 사회 생활에서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달서구의회서 ‘동물복지 증진 토론회’ 참석도
“동물 보호 위해 더 많이 나서주세요” 요구도

‘애니멀럽’ 동아리는 길고양이 돌봄 외에도 동물 관련 주제를 정해 토론회를 하거나 대외행사도 참여한다. 최근 동물실험과 동물보유세, 동물보호소 유기견 안락사 문제, TNR(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등에 대해 내부 토론을 하기도 했다. 지난 19일에는 달서구의회 초대로 박순석 수의사와 함께 동물정책을 고민하는 토론회 패널로도 참여했다. 임미연 달서구의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동물복지 증진 방안 모색이 주제였다.

▲ 지난 19일 경원고 애니멀럽 회원들은 달서구의회에서 열린 ‘청소년과 함께하는 동물복지 증진 방안 모색’ 토론회에 참석해 동물복지 정책에 대해 이야기 했다. (사진= 달서구의회)

토론에 참석한 학생들은 지자체에 동물보호에 더 많은 관심을 요구했다. 배동완 씨는 “최근에 동물학대 관련 뉴스가 많이 나온다. 저도 SNS를 통해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관심을 부탁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해야 강력한 처벌이나 재발을 막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사회적 관심을 강조했다.

나건규 씨도 공감하면서, “법도 강화되어야 하지만, 동물보호 제도가 너무 부족한 것 같다. 길고양이나 유기견 보호소 환경을 개선하고 안락사 같은 문제도 제고되어야 한다”고 했다. 빈성진 씨는 “더 많은 길고양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동물보호 예산이 확보되어야 할 것 같다”고 바람을 전했다.

학생들과 함께 토론회를 주최한 임미연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은 “대구고양이보호연대에서 공공급식소에 고양이 사료를 기부하고 싶어해서 경원고와 연결 시켜주면서 직접 가서 살펴봤다. 그 일을 계기로 학생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토론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길고양이를 보살피고, 동물 정책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는 모습이 긍정적이다. 교육적으로도 ‘생명존중’을 배우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역에 이런 곳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