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6-끝) 미래가 있다면 녹색정치

검은 숲 ‘슈바르츠발트’와 티티제 호수에 가다
녹색정치가 동네와 지구를 바꾼다
녹색 정치를 뒷받침하는 선거제도
한국녹색당의 과제와 도전
2024 국회의원 선거와 녹색당의 선택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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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허승규 전 녹색당 부대표는 2023년 7월 2일부터 14일까지 13일 간 독일로 생명평화기행을 다녀왔다. 독일은 녹색당이 연립정부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한국의 녹색당 정치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독일 역시 최근 극우정당 지지율이 20%를 넘기도 한, 완벽한 사회는 아니다. 2주 동안 허승규 부대표가 경험한 독일의 모습과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매주 연재한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 경북 녹색당 정치인에게 독일은?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2) 프랑크푸르트 지하철역에서 만난 반려동물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3) 녹색당은 하루 아침에 집권한 게 아니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4) 에베르트 재단에서 느낀 여당의 무게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5) 녹색당 위르겐 트리틴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6) 보행자가 살기 좋은 베를린의 풍경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7) 베를린에서 핵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를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8)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다짐한 소명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9) 재자연화 이자르강 생태탐방과 4대강 사업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0) 녹색당 도지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1)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집회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2) 바덴뷔르템베르크 녹색당 주의원을 만나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3)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LG트윈스와 녹색당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4) 16개 정당 공존하는 녹색도시 프라이부르크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5) 에너지자립마을 프라이부르크 보봉

검은 숲 ‘슈바르츠발트’와 티티제 호수에 가다

귀국을 앞둔 독일생명평화기행단은 마지막 일정으로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대표적인 산림 지역인 슈바르츠발트를 방문했다. 슈바르츠발트는 검정과 숲의 합성어로 검은 숲, 흑림(黑林)으로 불린다. 과거 로마인들은 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 어둡고 침침한 숲을 검은 숲이라고 불렀고, 슈바르츠발트의 어원이 되었다. 슈바르츠발트는 다수의 보호림 때문에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면서, 독일녹색당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1970년대 서독 정부는 슈바르츠발트 인근 지역인 비일(Wyhl)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했다. 대규모 원전 건설 반대 시위는 독일녹색당 창당의 원동력이었다. 비일 원전 건설 반대와 함께 지켜낸 검은 숲은 독일녹색당과 바덴녹색당에게 특별한 곳이다.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슈바르츠발트 일정은 2주간의 기행을 돌아보고 한국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기행단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기행단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독일 남부의 산과 강, 공기와 바람을 느꼈다. 검은 숲은 아름다운 장소였다. 그런데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경북 봉화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경북 청송에 있는 주왕산국립공원이 떠올랐다. 한국에 돌아가면 생태탐방 장소로 어디를 가면 좋을지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검은 숲을 거닐었다.

검은 숲을 둘러보고 근처 티티제 호수로 이동했다. 평화로운 티티제 호수를 기행단원들과 보트를 타고 가로질렀다. 물아일체(物我一體)와 안빈낙도(安貧樂道)로구나. ‘독일’이란 나라와 ‘티티제’라는 지명은 인간들이 만든 개념이다. 숲, 호수, 오리는 어떻게 이름 붙이던 간에 그 자체로 숲과 호수이자 오리였다. 여러 관념을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된 녹색의 시간이었다.

독일에서 경험한 2주간의 시간

티티제 호수 일정을 끝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각자 회고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녹색 도시 프라이부르크를 떠나서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으로 갔다. 2주간의 독일 생명평화기행을 마치고 한국에 왔다. 기쁜 마음으로 귀국했으나 슬픈 소식을 마주했다. 내가 살고 있는 경북 북부 지역을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폭우로 희생되었다. 작년엔 서울 도심 반지하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희생되었고, 올해는 지방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희생이 컸다. 충북의 지하차도에서 희생된 시민들은 평범한 이웃이었다.

▲[사진=생명평화아시아]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기후재난이 우리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예방하는 과감한 정책도 필요하지만, 엎질러진 위기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적응 정책도 절실하다.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서울에 살던, 지방에 살던 사회적 약자들이 더 위험하다. 한국의 극한 호우와 지구 반대편의 폭염 소식이 연이어 뉴스에 나왔다. 극한 호우 이후에 우리는 어떤 재난을 경험하게 될까. 폭우로 희생된 시민들을 추모하며, 더 이상 피해가 없기를, 그리고 실종된 시민들 가운데 생존 소식이 전해지길 기원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였다. 패전 이후 독일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회복하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했으며, 산업화의 성과는 복지를 통해 노동과 함께 나눴다. 산업화 이후 핵발전 사고 및 기후위기 등의 환경재난에 대비하여 국가적으로, 지역적으로 적극적인 녹색전환을 펼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아픔이 서린 다하우 수용소부터 녹색당이 장기집권중인 프라이부르크까지 전후 독일 사회의 변화를 짧은 2주간 체험했다.

독일 사회도 완벽하지 않았고,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극우정당 지지율이 20%를 넘었으며, 독일 시민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의 고통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차 없이 지하철, 버스, 트램, 자전거, 도보, 휠체어로 편하게, 저렴하게 반려동물과 함께 이동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독일에선 자전거 운전과 수영이 의무교육이다. 자전거 면허가 있는 독일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전거가 도로를 누벼도 화를 내거나, 크락숀을 울리는 일이 드물었다.

귀국 이후 독일생명평화기행 기고를 제안받다

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인 1989년에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안동에서 계속 자랐고, 대학 시절 서울 유학을 계기로 타지에 나가서 지냈다. 대학 졸업과 직장 생활을 마치고 다시 안동으로 내려온 지 수 년이 흘렀다. 고작 2주 만에 독일 사회의 녹색 전환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방인인 내가 경험한 2주의 시간으로 독일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다.

<뉴스민>으로부터 독일생명평화기행 기고를 제안 받았을 때 글쓰기를 주저했다. 나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일단은 경험을 나눈다는 느낌으로 기행 일정에 따라 글을 차곡차곡 썼다. 베를린에서부터 바이에른을 지나면서 어떻게 마무리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다. 단순한 소감문을 넘어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나는 이번 기행에서 무엇을 느꼈고, 앞으로 어떤 실천을 펼쳐갈 것인가.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2주간의 경험으로 독일 사회의 녹색전환을 그럴듯하게 쓰는 것은 불가하다. 나는 그것을 겸허히 인정하기로 했다. 독일 전문가들은 한국에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독일 사회를 통해 바라본 한국 사회의 이야기다. 내가 태어나서 자랐고,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를 지난 2주간의 체험을 통해 비교해본다. 독일에서 대한민국을,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경북을, 프라이부르크에서 안동을 떠올렸던 경험을 나눈다. 경북 안동의 녹색당 정치인이 독일의 일상과 풍경을 바꿔온 녹색정치를 이야기하며, 한국과 지역의 녹색정치가 나아가야할 길을 그려본다. 결국 독일생명평화기행은 한국생명평화기행 기고인 셈이다. 내가 서있는 동네와 나라에서 어떻게 녹색정치를 펼칠 것인지 다짐하고 선언하는 글이기도 하다.

녹색정치가 동네와 지구를 바꾼다

▲[사진=녹색당]

한국녹색당이 처한 상황은 독일녹색당과 너무나도 다르다. 한국녹색당은 지방의원, 국회의원이 0명이다. 선출직 공직자의 숫자 또한 정당의 실력이다. 왜곡된 선거제도를 감안해서 지지율만 본다면 총선에서 10%를 넘지 못 했다. 독일녹색당은 현재 연립정권에 참여하여 연방정부를 이끌고 있다. 736여명의 연방의원 가운데 118명이 독일녹색당이다. 전국 곳곳에 독일녹색당 지방정부를 운영 중이다. 독일녹색당과 동일선상에서 한국녹색당의 현재와 미래를 비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독일녹색당이 겪고 있는 고민은 말 그대로 참고사항일 뿐이다.

독일 녹색정치의 최전선은 신호등 연정과 극우정당인 대안당 사이에 있다. 한편으론 제도권 바깥의 기후·녹색 운동과 제도권의 녹색정치 간의 긴장과 협력이 있다. 반면에 한국 녹색정치의 최전선은 기성정치권력과 제도권 바깥의 녹색당·녹색시민사회 사이에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까지 제도권 내의 녹색정치는 지나치게 소수파다. 일부 정치세력이 녹색과 기후를 들고 나오지만, 생태학적 한계에 기반한 녹색정치의 본류라고 하기 어렵다. 녹색당과 녹색시민사회 간의 정치적인 결합도도 약하다. 한국녹색당은 독일녹색당의 현재 이전에 과거에 주목해야 한다.

독일녹색당이 있기까지 녹색 운동과 녹색 정치를 연결하는 무수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새겨야 한다. 그들은 40년 동안 부단히 녹색 시민을 아래로부터 조직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변방의 녹색 의제를 독일 정치의 중심적인 의제로 끌고 들어왔다. 탈핵에너지전환과 같은 실질적인 변화도 이뤄냈다. 40년 동안 정치의 영역에서 녹색 가치를 내걸며 고군분투해온 역사는 거시적인 국가 정책뿐만 아니라 많은 일상의 풍경을 바꿔왔다.

반려동물과 함께 지하철을 타는 장면과 49유로 티켓을 이용하는 모습이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의 풍경이 달라질 수 있도록, 독일의 녹색정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해왔을까. 독일의 녹색운동과 정당정치는 환경재난 문제를 정치의 영역으로 이끌었고, 결국 20세기 최초의 탈핵국가를 만들었다. 특히, 녹색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지역과 동네의 녹색전환을 구체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었다. 녹색당이 제1당인 프라이부르크 인구는 23만이다. 인구 15만인 경북 안동에서 녹색 도시를 못 할 이유가 없다. 녹색정치가 동네와 지역을, 나라와 지구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녹색 정치를 뒷받침하는 선거제도

한편 독일의 다양한 정치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으로 선거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독일은 민심 그대로 의석수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가이다. 연동형 선거제도는 말 그대로 실제 지지율과 지역구 의석수를 연동한다. 실제 지지율보다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으면, 비례대표를 못 가져가고, 실제 지지율보다 지역구 의석이 적으면 부족한 의석수를 비례대표로 채워준다.

특정정당이 30% 지지율을 얻으면 30%의 의석을 보장한다. 만약 지역구에서 30% 이상 의석이 생기면 비례대표가 0석이며, 반대로 지역구에서 10%만 의석을 얻었다면 비례대표로 20%를 채워준다. 반면에 병립형은 연동형과 달리 실제 지지율과 지역구 의석수를 연동하지 않는다. 지지율보다 지역구에서 많이 당선되어도, 비례대표 의석은 별개이다. 이와 같은 병립형 선거제도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의 거대양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다.

독일도 연방의원의 절반은 지역구 선거로 뽑는다. 지역구는 한국처럼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다. (다만 비례대표에도 이중등록할 수 있어서, 지역구에 낙선했는데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도 있다.) 그런데 비례대표가 50%에 달하므로, 지지율에 비해 지역구 당선이 적은 정당은 비례대표를 통해서 부족한 의석을 채운다.

독일녹색당은 2021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14.8%를 얻었다. 지역구에서 16석을 얻었고 비례대표에서 무려 102석을 얻어서 총 118석이다. 전체 의석 대비 16%다. 만약 독일녹색당의 결과를 과거 한국의 전국 단위 병립형 선거제도에 적용하면 약 19~20석 정도다. 전체 의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7%다. 같은 선거결과를 두고 연동형인지, 병립형인지에 따라 의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달라진다. 독일의 연동형 선거제도는 녹색당의 정치적인 성장을 촉진했다.

나는 녹색 도시 프라이부르크에 대한 정치적 편견이 있었다. 녹색당의 거점 도시이기에, 프라이부르크 정치를 녹색당이 압도적으로 차지하고 있을 거란 편견이었다. 48석 가운데 13석은 27%다. 1당 치고는 의석수가 적다. 기독교민주연합과 사민당이 각각 6석을 얻어서 2당이다. 12%를 넘긴 2당들도 의석수가 고만고만하다. 흥미로운 것은 무려 16개 정치단체가 프라이부르크 시의회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13개 정치단체가 3석 이하의 소수파다.

전 세계에서 견학 온다는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혼돈의 다당제 구도였다. 한국의 정치·행정·언론·학계·시민사회에서 프라이부르크를 다녀오면 대부분 한국에서도 녹색 도시가 필요하고, 녹색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정작 녹색 도시를 만든 프라이부르크의 지역 정치는 크게 다루지 않는다. 48석 가운데 16개 정치단체가 제도 권력을 분점하는 정치시스템에서 역동적인 녹색 도시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직면할 필요가 있다.

혼돈의 다당제인 프라이부르크 의회정치를 현재 선거법 개악을 고려중인 거대양당 지도부가 겸허히 배울 필요가 있다. 권력을 독점하지 않아야 오래 갈 수 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180석은 다음해 재보궐 선거와 2022년 대통령 선거 패배의 전초전이었다.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국민의힘 정권은 집권 이후 권위적인 당정관계, 우편항적인 정책 지향, 야당과의 불통 정책으로 일관했다. 결국 올해 10월에 열린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했다.

본인의 소속 정당 내부 정치 및 야당과의 관계에서 불통으로 일관해온 윤석열 대통령과 단독 과반을 위해 본인의 공약을 파기하려는 이재명 대표는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를 본받아야 한다. 자칫하면 내년 총선에서 거대양당 둘 다 심판받을 수 있다. 선거법 개악으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지 않길 바란다. 선거제도가 바뀌면 정치의 풍경이 달라진다. 정치의 풍경이 달라지면, 도시의 풍경도, 나라의 풍경도 달라진다.

▲[사진=녹색당]

한국녹색당의 과제와 도전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관해서 독일녹색당과 한국녹색당은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신호등 연정’에 참여하는 독일녹색당은 지난 10월 하마스 공격 이후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하며,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에 연대감’을 표명했다. 독일 사회가 유대인 학살에 대해 역사적 책임이 깊은 것은 이해한다. 하마스의 폭력적인 행위 또한 일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의 행보는 정당방위를 넘어서 명백한 군사적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중동의 전쟁과 갈등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역사적 책임은 분명하다. 녹색당의 반전평화 세계관은 그저 낭만적인 수사가 아니다. 표면적인 폭력 행위 뿐만 아니라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차별과 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세계관이다. 가장 이상적이면서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세계평화 실현의 정치기획이 세계녹색당 공동체다.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행위자인 개별 국가 내부에서 녹색과 평화를 실현하려는 정치세력들이 국가를 넘어 함께 연대하고 공동의 정치를 모색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강력한 패권국가의 힘에 의한 평화도, 국지적인 전쟁과 갈등이 난무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모두 지구적 평화의 길이 아니다. 세계패권국가에 의한 거짓 평화와 공동의 적극적인 평화적 실천이 없는 무책임한 방임주의 둘 다 대안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지구적 평화와 국제적 연대를 지향하는 세계녹색당 일원으로서 독일녹색당의 주류적인 입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연립정권에서의 독일녹색당의 입장과 실제 독일녹색당 내부의 입장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여하튼 독일녹색당 또한 완벽하지 않으며, 녹색당의 가치 실현과 관련해서 비판받을 순 있다. 독일녹색당에게 배울 점은 배우고, 비판할 점은 비판하면 된다. 그런데 독일녹색당의 과제는 우선적으로 그들의 과제이다. 문제는 한국녹색당이다.

2012년 녹색당 창당의 소명이 무엇이었던가. 반(反)생태적인 기성정치를 교체해서 녹색정치를 실현하고, 녹색 가치를 사회 곳곳에 스며들 수 있게끔 정당으로서 역할을 위해 창당했다. 2023 녹색당 당원 의식조사 결과, 녹색당 강령에 있는 ‘반(反)정당의 정당’을 당원의 74.4%는 ‘기존 정당과 구별되는 정당’으로 이해했다. ‘정당 정체성을 거부하는 사회운동’으로 이해한 당원은 25.6%다.

물론 ‘이해’와 ‘동의’가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고, 당원들의 여론을 종합하면 사회운동의 정신을 담아, 반생태적인 기존 정당과 구별되는 대안정당으로서 녹색당의 정체성을 이해해야할 것이다. 지역과 중앙에서 입법권력과 집행권력을 교체하고 녹색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창당 정신과 소명에 비추어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정당은 시민단체와 달리 정치적인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한국녹색당은 녹색시민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데 부족했다.

이는 공직선거에서 정치적 효능감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와 연관된다. 운동과 선거를 구분하는 것은 단편적인 발상이다. 녹색운동의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최선의 선거운동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녹색당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정치적 에너지로 전환시켜 왔는가. 우리가 반녹색·반생태적인 정치를 바꾸고자 정당을 만들었다면, 목적에 적합한 실천을 해야 하지 않는가.

녹색당은 2012년 총선, 2012년 대선, 2014년 지선,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 2022년 지선까지 9번의 공직선거를 경험했다. 최근에 열린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까지 치면 10번이다. 2번의 대선에서 녹색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이른바 ‘기권’이다. 녹색당은 10번의 선거에서 승리해본 경험은 없다. 공직자를 배출한 적이 없다. 비록 선거 승리의 경험은 없지만, 정치적 효능감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2016년 총선은 말 그대로 ‘졌잘싸’ 선거였다. 0.76%로 원내진입에 실패했지만, 동물권·탈핵·기본소득·미세먼지 등의 의제는 많은 주목을 받았고, 추후 기성정당들도 일부 정책을 반영하기도 했다. 총선 이후 당원이 늘어나서 창당 이래 가장 많은 당원수인 1만 당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이후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과거에 비해 정치적 존재감도 약해졌다.

한국녹색당의 소명은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한국 정치의 변방이었던, 한국 정치 바깥에 있었던, 변방에서도 변방인 생태주의 정치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일이다. 탈성장과 정의로운 전환은 매번 조화로울 수 있을까? 탈성장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을까? 실제 정책에 있어서 그린뉴딜과 기후정의의 경계는 어디인가? 정당으로서 녹색당에게 필요한 용기는 이러한 논쟁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태도다. 완벽한 정답이 없더라도 계속 토론하면서 나아가는 태도다. 치열하고 과감하게 논쟁하되 다른 생각도 존중하는 ‘담대한 겸손함’이 필요하다.

한국녹색당의 과제인 녹색정치세력화는 한국녹색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녹색운동이 어떻게 정치세력화할 것인지, 정당정치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녹색운동은 정당정치와 거리두거나, 민주당 계열 정당을 우선 소통 대상으로 삼고 비판과 활용을 번갈아하거나, 진보정당 내 녹색정치를 도모하거나, 녹색당과 같은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선택지일 것이다. 녹색당이 그들의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녹색당은 그냥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즐기면 되는 아마추어 동호회일까?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팬들의 바람에 복무해야하는 프로야구 구단에 가까울까? 소수의 활동당원은 동호회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런데 다수의 평당원들, 녹색당원들보다 훨씬 많은 한국 사회의 녹색시민들에게 아마추어 동호회 같은 정당은 어떤 의미일까?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된 반(反)녹색 정치를 교체하기 위해 창립된 녹색당에 소명에 비춘다면 녹색당의 길은 명확하다. 1부 리그에 들어가서, 수십 년 동안 회색 빛깔로 1부 리그를 독점해온 기성 구단(정당)들과 녹색 빛깔로 경쟁하는 일이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회와 지방의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바깥에 있는 녹색당의 현재 모습이 녹색당의 미래여선 안 된다.

2024 국회의원 선거와 녹색당의 선택

▲[사진=녹색당]

어느덧 다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온다. 2024 총선을 100일 정도 앞두고 있다. 요즘 한국 정당 정치가 복잡하다. 거대양당 구도를 바꿔보기 위해 수많은 제3세력이 등장했다.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다양한 이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녹색정치는 그들에게 후순위다. 생태와 평화의 세계관을 전면에 내건 정치세력은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녹색당은 이중 과제에 놓여있다. 내부적으로 오랜 정치적 피로감을 극복하고 당원 및 지지자들에게 녹색정치의 효능감을 드러내야 한다. 외부적으로 생태와 평화의 세계관에 기반한 녹색정치세력을 모아내고 다른 정치세력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녹색당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녹색당 전국위원회는 최근 아래의 2024 총선 방침 및 목표를 승인했다.

1. 녹색당은 2024년 총선에서 자본주의 성장중심주의가 낳은 삶의 위기를 해결하고 거대 양당정치와 결별하는 녹색 대안 정치를 일구기 위해, 기후·녹색운동과 연대하여 기후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

2. 녹색당은 2024년 총선에서 기후정치세력화와 거대양당체제 타파를 위한 원내진입을 목적으로 기후·녹색운동 및 진보정당과 강력한 선거연합을 추진하며, 정의당을 시작으로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한다.

3. 2024년 1월, 녹색당은 2024년 총선에 앞서 ‘기후정치대회’를 개최하여, 당의 사회 비전을 담은 ‘기후정치선언문'(가칭)과 당의 정책적, 정치적 원칙을 담은 ‘기후정치강령'(가칭)을 수립한다.

녹색당 전국위원회의 입장처럼 내년 총선에서 대안적인 녹색정치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이들과 선거연합을 통해 반(反)녹색 기득권 정치에 맞서는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2026지방선거와 2027대통령선거, 2028총선까지 내다보며 녹색정치세력을 결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총선을 통해 차기 지방선거에서 지역의 생태적인 전환을 내걸고, 대안적인 지역소멸 담론을 펼칠 이들을 모아내자.

이번 총선을 통해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생태국가와 녹색헌법을 정치적 비전으로 제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엮어내자. 2012년, 한국의 녹색정치세력을 모아 대안정치세력이 되고자 녹색당이 탄생했다. 창당 정신을 되새기며 내년 총선과 총선 이후를 준비하자. 변화는 오래 걸리지만,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변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난 10년으로 부족했으면, 10년 더 노력하자. 10년 더 노력해서 녹색전환의 21세기를 계속해서 만들어가자.

이번 총선만으로 당장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녹색당은 창당 정신과 소명에 따라 퇴행하는 한국 정치에 맞서 싸울 책임이 있다. 현존하는 한국의 정치세력 가운데 가장 녹색정치에 진심이었고, 가장 오랫동안 녹색정치를 준비해온 녹색당의 원내진입은 녹색당 뿐만 아니라 녹색시민들에게도 새로운 전환이 될 것이다. 더 이상 독일녹색당을 부러워하지만 말자. 동아시아,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사고를 친다면 독일녹색당보다 훨씬 감동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사진=녹색당]

식민지 지배를 경험하고 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국녹색당은 독일녹색당보다 녹색평화외교를 더 깊고 넓게 펼칠 수 있다. 먼 훗날 독일녹색당과 한국녹색당이 각각 집권해서 녹색평화외교를 함께 펼칠 그 날까지, 중동 문제에 있어서 차이를 조율하고 더 나은 대안을 협의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서구 중심적인 녹색평화외교 담론이 아닌 아시아를 포함한 변방에서 녹색평화외교 담론을 이끌어갈 그 날까지, 한국녹색당도 독일녹색당처럼 지방정부·국회·행정부 등에서 녹색당 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분발하자.

독일생명평화기행 시즌2는 한국에서의 과감한 녹색정치로 이어갈 예정이다. 내년에는 한국에서, 지역에서 일상과 생활의 생명평화기행을 다짐해본다. 동네에서 지구까지 녹색정치를 실현할 생명평화기행에 함께할 시민 여러분을 열열이 환영한다. 녹색정치를 실현할 생명평화기행에 함께 하시죠! 경북 안동의 녹색당 정치인도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