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성주 투쟁 오천년 역사 관점에서 육필로 남겨야”

전교조 前위원장 이영희 선생 인터뷰
“기록하지 않는 역사는 힘이 없어요”

11:38

10월 7일 성주 성밖숲 앞 커피숍에서 제4대 전교조 위원장을 역임한 이영희 선생을 만났다. 가을비가 또 내렸고 선생과 성주 사드 투쟁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여기에 다 옮겨 적을 수는 없고 핵심적인 이야기만 추려 적는다.

▲이영희 전 전교조 위원장
▲이영희 전 전교조 위원장

“제가 계림 부원군 충무공 이수일의 16대손이에요. 이수일이 누군가 하면 정유년(1597년 선조 30년)에 나주 목사로 제수된 이원익이 목사로 부임하기 전에 성주에 체찰부(임시지휘부)를 설치했는데, 제 16대 할아버지인 이수일을 불러서 중권(군사직책, 중령급의 직책)을 맡도록 했어요. 마침 성주 목사가 결원이어서 이원익 목사가 공을 추천하여, 성주 목사직을 대리하도록 했어요. 이때 명나라 장수 24명이 성주 성 안에 머물러 있었고, 조정에서는 사신들도 들락거리며 붐볐어요. 서류는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이수일 공이 잘 대응하고 처리하여 조정의 환심을 샀습니다. 분석하고 결단함에 막힘이 없어서 책상의 서류가 씻은 듯이 깨끗하였다고 해요. 또한 이수일 공은 금오수장(금오산성의 수비대장)을 겸직하였는데 갑옷을 수리하고 성첩을 보완하여 정유재란 당시에 영남에서 호남지방으로 향하던 적을 크게 무찔렀어요. 그 지역이 적산(赤山)과 고양(高陽) 사이인데 왜적이 감히 1백리 가까이는 노략질을 못 했다고 전해집니다.”

선생은 대동여지도에 적산이란 지명이 그대로 전해진다면서 적산사가 있는 지금의 금수면 어은리 일대가 왜적을 물리친 적산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양이란 지명은 옛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대동여지도에 곡령(谷靈)이란 지명이 월항면에 있었는데, 그곳이 귀신이 많은 골짜기란 뜻인데 예로부터 수많은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선생은 그곳이 고양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주에서 초전 방면으로 가는 길의 왼쪽이 적산이고 오른쪽이 고양으로 추정되는데 그 일대에서 왜적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에 조정의 방침이 ‘진관체계’였어요. 다시 말해 성안에서 고을을 지켜라, 외부세력과 연결해서 싸우지 마라, 그런 방침이 ‘진관체계’이었어요. 백성들이 연대해서 민란으로 확대될까 두려웠던 것이지요. 그러니 당연히 왜적들에게 나라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고요. 성주 사드 투쟁 초기에 등장했던 ‘외부세력’의 논리와 똑같았어요. 최근에 이완영 국회의원이 촛불집회에 나오는 성주 사람들은 ‘좌파종북세력’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 있지요. 그러다가 정유재란 때는 임진왜란의 패배를 교훈 삼아 ‘제승방략(制勝方略)체계’로 전략을 바꾸게 됩니다. 제승방략체계는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철저하게 연대해서 싸우라는 전략이지요. 끝까지 적을 추적해서 적을 몰살시키라는 전략입니다. 이렇게 민관이 단합해서 진을 구성해서 싸우니 당연히 이순신 같은 위대한 장수가 탄생하게 됩니다. 백성이 이순신 장군을 따라다닌 이유가 두 가지라고 해요. 첫째는 탐관오리의 폭정에 시달리지 않고 둘째는 이순신 장군만 따라다니면 죽을 일은 없기 때문이라고 해요. 참 뼈아픈 말이지요.”

이영희 선생은 일본과 명나라가 조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나누어 먹으려고 했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시대적 상황이 지금의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사드배치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상황과 같다고 말했다. 일본이 명을 치려고 하니 길을 내어달라는 상황과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 전략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김수상 시인(왼쪽)이 이영희 전 위원장을 인터뷰하고 있다.
▲김수상 시인(왼쪽)이 이영희 전 위원장을 인터뷰하고 있다.

“사드배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체계에 한국을 편입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에요. 역사를 더듬어보아도 미국은 유사시에 한국을 관심에 두지 않아요. 중국과 러시아의 방어선으로만 가치를 두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해요. 그러나 우리는 강대국의 이러한 힘을 잘 이용하면 오히려 우리가 안보에 주도권을 가질 수 있어요. 바둑을 둘 때도 전체의 형국을 살피고 귀퉁이 돌을 잘 활용하는데 지금 우리는 초보가 두는 바둑보다도 못한 정책을 가지고 있어요.”

이영희 선생은 요즘도 노인이 많은 공원에 사드배치 반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한다.

“제가 1인 시위를 하면서 전쟁세대인 노인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면 귀를 기울여 들어요. 대략 이런 얘기를 들려주지요. 사드는 미사일을 막지 못한다. 핵폭탄이 공중에서 터지면 맞춰도 문제이지 않느냐. 그리고 북한은 핵이 100개 있어도 우리에게 안 쏜다. 북한이 핵폭탄 공격을 할 경우에 미국에 의해 자기들도 쑥대밭이 될 것을 아는데 북한이 선제공격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평양에 고층건물이 얼마나 올라가는데 자기들이 자멸하려고 빌딩을 짓겠느냐. 우리가 강대국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인조처럼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귀를 기울여 들어줍니다.”

이영희 선생의 사드에 대한 생각은 명확했다. “북핵도 싫고 사드도 싫다. 사드는 북핵을 막지 못하고 북핵은 평화를 위협한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은 상호불가침조약을 맺고 평화적 외교관계를 수립하라.” 선생은 우리가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는 기록하는 것입니다. 기록하지 않는 역사는 힘이 없어요. 저는 성주의 인간띠잇기 행사를 보면서 이 싸움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왜냐하면 어린아이들부터 할매, 할배들까지 모두가 하나 되는 투쟁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런 싸움은 민주화운동 역사상 없었어요. 거기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었어요. 전쟁의 불안감을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사랑의 정신이 있었기에 이 싸움은 오래가도 지치지 않고 반드시 이기는 싸움이 될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위대한 투쟁을 5,000년 역사의 관점에서 육필로 남겨야 해요. 디지털 시대라서 종이책이 홀대받는 시대이지만, 이제는 문자의 깊이를 되찾고 우리의 위대한 투쟁을 눈에 보이는 연필의 기록으로 남겨야 해요.”

때마침 성주의 젊은 아주머니들과 ‘글쓰기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선생의 말씀을 듣고 할 일이 생겼다는 생각을 하며 성밖숲을 나섰다.

선생은 ‘성주의 뼈를 찾는 문화 운동’에 대해 새겨들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것은 <뉴스민>의 지면이 허락되면 다음에 기고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