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 소리에 지신(地神)들도 놀랐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기고] <多情> 회원들, 소성리 지신밟기 행사를 다녀오다

12:50

입춘이 어제였다. 간간히 비가 뿌렸다. 봄비다. 성주군청에서 905번 김천방향 국도를 따라 20여 분 가다 보면 초전면 용봉리를 만나게 된다. 용봉리에서 성주롯데골프장 방향으로 좌회전을 했다. 깃발이 양 길가에서 펄럭이고 있다. 파란 바탕에 흰 글씨 “여기는 원불교의 성지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현수막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 평화로운 농촌 풍경과는 사뭇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곳이 국방부에서 강행하는 사드배치 지역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진입로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작은 초등학교를 만난다. 초전초등학교 봉소분교장이다. 예쁜 아이를 닮은 유치원처럼 교문부터가 귀엽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현수막 수십 개가 집집이 걸려 있다. “사드가고 평화오라!” 낡고 빛이 바랜 현수막은 투쟁의 시간이 짧지 않았음을 알게 해주었다.

소성리에는 평화의 종교, 원불교 2대 종사인 정산종사 생가가 있다. 원불교 성지인 소성리는 달마산 기슭, 양지바른 곳에 있는 시골마을이다. 정산종사 생가 북쪽에는 ‘허봉’이라는 봉우리가 우뚝하다. 소성지와 월곡지의 풍부한 물로 농사를 지으며 오순도순 살아왔던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소성리다. 느닷없이 사드배치라는 일방적인 정부 발표 이후에 마을은 일상을 잃었다. 소성리 주민 70여 명은 매일 순번을 정해 롯데골프장 진입로인 마을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그리고 밤이면 성주군청으로 나와 사드반대 성주촛불문화제에 참석한다. 바람마저 쉬어가고 꼬맹이들의 재잘거림이 금방이라도 들릴 듯하다. 평생을 시위라고는 모르고 살아왔던 이들에게 누가 이런 시위를 하게 만들었을까. 지난해 11월 26일 평화를 향한 파란 발걸음을 내디디며 “사드 가고 평화 오라!”고 외친 곳, 이곳은 전쟁무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소성리에 사람이 살고 있다.

▲별고을광대의 지신밟기에 소성리 마을 주민들이 함께 했다.

“올 한해 소성리에 사드귀신도 막아내고 모두 한가태평하시라고 성주풀이 한번 해보세!” 상쇠의 신호에 장구, 북, 징이 저마다의 소리를 쩌렁쩌렁 울렸다. 심술을 부리려는 소성리 마을 지신들을 달래주고 얼러주기 위해서다. “소성리에도 사람이 있다!”고 외쳤던 임순분 부녀회장님. 부녀회장님 말처럼 소성리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쩌렁쩌렁한 사물 소리가 소성리 지신(地神)들을 울려서 사드를 막아낼 수 있을 듯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마을에 사드 악귀라니,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국방부는 소성리에 있는 골프장을 내놓으라고 끊임없이 롯데를 압박하고 있고, 소성리 사람들은 이 거대한 액운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원래는 저희가 소성리 마을 어르신들을 위로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계획한 날짜에 못하고 미뤄졌는데 다시 정해진 날짜가 음력 정월 초에 잡혀서 지신밟기를 하게 됐어요.” ‘평화를 사랑하는 예술단(평사단)’ 김기태 씨는 상쇠를 맡았다.

매일 촛불무대에서 힘찬 몸짓을 보여주는 것도 모자랐는지, 소성리 주민을 위해 이렇게 마음을 내고 품을 낸 것이다. 풍물을 하고 음식도 장만했다. 작은 마을 소성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지신을 눌러주고 떠들썩한 잔치까지 벌였으니 이미 사드가 가버린 듯했다.

“올 한해 저희 풍물소리 들으면서 모든 액들은 저 밖으로 물러가고 온갖 복들만 소성리 마을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기도해봅시다. 그려~” 정유년 정초에 소성리 마을에 풍물소리가 드높았다. 이 사설들이 사물 소리를 타고 지신을 울리고 성주신을 울리고 하늘을 울렸을 것이다. ‘별고을광대’의 풍물소리에 할머니들도 신이 났다. 마당을 빙빙 돌고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방방마다 사드 잡귀를 쫓아내고 평화를 부르는 지신밟기 장단이 이어졌다.

▲별고을광대의 지신밟기에 소성리 마을 주민들이 함께 했다.

“여기 할매들이 팔십, 구십이 다 넘어 천년만년 살 거는 아니지만, 사드는 어림도 없데이.” 이채구(81) 할머니는 화를 누르며 연신 고개를 흔드셨다.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 앞에서 이석주 이장(64)도 한마디 하신다. “평사단이 할매들 애 자신다고 이리 풍성한 잔치 자리를 마련해주니 얼매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더.” 이장님 소원을 여쭈었더니, “사드가 가서 동네가 예전처럼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사드 물러 가서 평안하게 살고 싶다’는 이석주 이장님

평사단에서 준비한 음식이 가득했다. 떡이며 고기며 배부르게 실컷 먹고 나니 한쪽에선 상이 치워지고, 한쪽에선 막걸리가 사발을 돌린다. 이야기꽃도 한창이다.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안방에는 벌써 상은 다 치워졌다. 어머니들은 편하게 다리를 뻗고 눕기 시작한다. 방문을 열리지 않게 꼭 닫아놓으시고, 편안한 오후의 여유를 부리려고 하시나 보다. 살그머니 할머니들 곁으로 다가갔다.

▲소성리 마을회관 안

“지난번에 어느 기자가 와서 묻더라. 여기 왜 군수사진이 없습니까, 이 카대, 우리가 내다 버렸뿟다 캤다. 문디 같은 군수 놈이 뭣 땜시 3부지는 이야기해가꼬 우리를 이렇게 골탕을 먹이나 싶어서, 사드 몰고 온 항고니(김항곤 군수) 자슥을 확, 분질러삐맀다고 하니까, 그 기자가 막 웃대”

▲지난해 여름까지 소성리 마을회관 벽에 걸려있던 김항곤 군수와 찍은 사진, 지금은 없다.

백광순(74) 어르신은 지난 7월 성산포대로 사드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일같이 성주군청에서 열리는 촛불에 참석했다고 한다. 11월까지는 갔었는데, 촛불집회에 가고 싶어도 태워줄 차량이 없어서 못 간단다. 아들 낳기까지 딸만 내리 셋을 낳았다는 백광순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소성리 마을에 있는 ‘알알이 된장공장’에 다녔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일하면서도 촛불을 밝히러 다녔다고 한다.

▲왼쪽 백광순(74)할머니, 오른쪽 도순덕(76)할머니

지금은 촛불을 못 가서 섭섭하고 궁금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소성리 마을이 알려지면서, 오늘처럼 평사단의 젊은이들이 지신밟기를 한다고 찾아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된장공장 일한다고 매주 수요일마다 소성리에서 열리는 사드반대 집회에 참석 못 하는 게 늘 마음에 걸린단다. 아무리 먹고살기가 바빠도 수요일 소성리 집회는 참석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미안해했다. 지난 1월 18일, 한 번 참석했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힘이 불끈 솟더란다.

옆에 앉았던 순덕(76) 할머니는 촛불에 나가면 눈앞이 밝아지는 거 같은데,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면 마음이 우울해진다고 하신다. 촛불에선 우리가 힘을 합치면 사드도 물리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하지만, 텔레비전에서는 자꾸 사드가 금방이라도 올 거처럼 이야기하니까 마음이 불안하단다. 매일 촛불을 안 나가면 ‘가슴이 깝깝해서’ 안 된다.

“평화가 별거가? 우리 그냥 사는 대로 살게 편케 살게 해 주는 게 평화 아이가. 사드가 뭐꼬? 그기 와 하필 여기 온다고 해서, 우리를 이렇게 애 쓰이게 하는지 모르겠다. 촛불을 안 나가면 뭐가 금방 올 거 같아서 불안하다. 사드만 안 오게 해주다면 매일매일 촛불 나갈끼다.” 금연(81) 할머니는 성산포대로 사드 왔다는 소문을 듣고는 멋도 모르고 성주군청을 따라다녔단다.

“촛불에 가면, 불 때 주는 사람들 고생이 많다. 내 자슥한테 아궁이 불 좀 때라 해봐라. 모르긴 몰라도 짜증을 내면서 입이 댓발 튀어나와 있을 낀데, 촛불에 나온 그 사람들 맨날 천날 불 땐다고 나무패고 불쏘시개로 문지르면서 연기 다 마시고 있더라 아이가,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그냥 가서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오는 건데 힘들 끼 뭐가 있겠노.”

성주군수가 사드를 제3부지로 보낸다고 하더니, 그곳이 바로 할머니 집이 있는 소성리 마을 위였다. 롯데골프장 부지라서 지금까지 네 번 정도 빠지고 촛불을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한 번은 어디 간다고 빠지고, 한번은 이 한다고 빠지고, 또 한 번은 시어머니 기제사 치른다고 빠지고, 또 한 번은 며칠 전에 눈이 펑펑 쏟아져서 빠졌지. 서울도 벌써 세 번은 따라갔다. 우리 영감은 내더러 좀 뒤로 빠지라칸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갈끼다.”

210일 넘게 성주에서 사드반대를 염원하는 촛불을 드는 동안, 금연 할머니는 딱 네 번 빠졌단다. 앞으로 절대 안 빠지고 다 나갈 테니까 사드만 못 오게 해달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하신다.

▲롯데성주골프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경찰 버스가 서 있다.

초전면 소성리 마을에 접어드니 ‘사드반대’가 적힌 붉은 깃발과 현수막이 양쪽 길가에 줄을 지어 펄럭이고 있다. 신작로를 따라 소성리 마을을 지나니 국방부가 사드부지로 선정한 성주롯데골프장을 알리는 도로 안내 표지판이 나왔다.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무슨 까닭인지 경찰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골프장 방향으로 들어가니 경찰 승합차 한 대가 부리나케 따라온다. 골프장 입구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용역경비로 보이는 사람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차에서 내려 마주한 용역경비는 의외로 무척 젊었다.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안동에서 왔고, 군대 제대하고 용역경비 일을 하는 강(26) 씨라고 했다. 지금은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란다. 성주골프장에서 일을 한 지는 2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골프장이 사드배치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밝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롯데골프장은 국방부가 사드부지로 결정하고 나서, 지난해 12월 말부터 휴장에 들어갔다. 골프장에 일하던 노동자 130여 명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구속영장 기각과 면세점 사업자 선정 등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롯데는 신규 사업자로 선정됐다. 롯데의 사드부지 제공은 정권과 자본이 은밀하게 결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박근혜 탄핵이 기정사실로 되면서 롯데는 입장이 달라졌다. 중국 정부 눈치를 봐야 하고, 차기 정권 눈치도 봐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롯데가 가장 눈치를 봐야 하는 상대는 “사드가고 평화오라!”를 외치는 성주 군민과 사드반대를 지지하는 천만 촛불의 민중들이다. 성난 파도와 같은 촛불 민중의 힘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성리 마을에 봄이 오듯 다시 평화가 오리라 믿는다. 봄이면 꽃이 피고, 평화롭게 나비가 날아오르듯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130여 명도 골프장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믿는다.

언제나 밝은 미소의 김충환 위원장님과 인사는 합장하면서 “사드타파!”다. 앞으로 성주 촛불은 소성리와 어떻게 연대하여 투쟁할 것인가 질문했다. “성주 촛불과 소성리는 연대라는 말이 맞지 않은 것 같다”며 웃었다. 맞다. 초전이 성주고, 성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초전 소성리도 성주이기 때문에, 성주 촛불은 소성리와 함께 싸워나간다는 것이 기본원칙입니다. 평화나비광장에서 촛불집회를 하는 것은 성주 사람들 모두가 초전에 오는 사드를 함께 반대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또 실질적으로 사드가 배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소성리 투쟁도 병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김천주민(월명리, 노곡리)과 원불교 교무님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집회를 합니다. 성주 군민들은 김천 시민들과 원불교와 끝까지 사드배치를 막아내기 위해서 함께 할 것이에요.”

대한민국 어디에도 평화를 해치는 전쟁무기 사드는 안 된다는 기본원칙을 잊지 않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촛불을 들고 우리는 싸워왔다. 우리 성주군민을 자랑스러워하시는 위원장님이 계셔서 우리 촛불님들도 더 힘이 난다. 꽃이 피는 따뜻한 봄날, 평화나비광장에 파란나비들이 모여 잔치를 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오늘도 행복한 마음으로 210일째 성주 촛불을 든다. 촛불은 소성리를 밝히고 성주를 밝히고 대한민국을 밝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