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밖숲에서 소성리, 평화나비광장까지 사드 철회 싸움 1년, “성주가 평화다”

[르포]1년 전 싸움 시작된 성밖숲에서, 소성리, 평화나비광장까지
함께 울고, 웃고, 싸우면서 만들어진 공동체
11살 린이가 언제든 안기는 농민회장 아저씨
육아 때문에 몇 달 만에 나와도 반가운 율이 엄마

22:37

매미가 찐하게 울었다. 할머니 넷이 묵묵히 아름드리 왕버들나무 아래서 무언가를 뽑았다. “할머니, 뭐 뽑는 거예요?”, “잡풀, 잡풀 뜯는 기라” 13일 오후 1시 50분, 경북 성주 성밖숲은 한가로웠다. 잡풀 뜯는 할머니들,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왕버들 그늘에 누워 낮잠을 청하는 아저씨들, 이보다 평화로울 순 없어 보였다.

▲2017년 7월 13일 성밖숲.

“사드 배치를 결사 반대한다!” 정확히 1년 전 오늘, 성주군민 3천여 명이 이곳에 모여 한목소리로 똑같은 구호를 외쳤다. 김항곤 군수를 포함한 대표자들은 혈서까지 썼다. 주민 200여 명이 혈서를 챙겨 들고 상경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상경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국방부의 최종 발표 소식이 전해졌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성주읍내에서 차로 10분이면 차고 넘치는 성산리 성산포대로 발표됐던 사드배치 예정지는 ‘군수의 배신’으로 30분이나 가야 하는 소성리 골프장으로 옮겨졌다. 싸움터는 소성리로 옮겨갔고, 주민들도 시나브로 관심을 잃어갔다.

오후 4시경, 소성리에 도착했다. ‘서북청년단’ 등판에 붉게 새긴 조끼를 입은 남자가 확성기를 들고 소리쳤다. 피켓도 들었다. “성주 소성리 주민은 빨갱이가 아닙니다. 다만, 빨갱이 선동에 속고 있을 뿐입니다” 그를 기준으로 경찰이 길게 인간 띠를 만들어 주민들과 충돌을 막았다.

날은 뜨거웠다. 길게 늘어선 경찰들에게 덩치 큰 성주 주민이 긴 호스를 들고 다가가 물을 뿌렸다. 너도나도 손을 내밀며 차가운 물로 몸을 식혔다. 순서를 기다리는 경찰의 눈빛이 애처로웠다.

▲성주 소성리에서 주민들이 집회 관리를 하고 있는 경찰들에게 물을 뿌려주고 있다.

오후 4시 50분경, 윤재옥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대구 달서구을)이 다른 의원 셋과 함께 소성리를 찾았다. 주민들과 극우단체가 있는 곳에서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차를 멈춰 세웠다. 경찰 일부는 10여 분 전부터 도열해 ‘선배(윤재옥 의원은 경찰 출신이다)’를 기다렸다. 도준수 성주경찰서장은 거수경례하며 윤 의원 일행을 맞았다.

“현장에 민간인들이 불법으로 검문검색하고 있다고 보도가 나고, 경찰은 공권력을 제대로 행사 안 한다고 해서 현장을 봐야겠다 싶어 왔다. 경찰청에 법질서를 확립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개선이 안 되는 것 같다. 검문검색하는 건 법 위반이다. 그런 건 방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윤 의원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특별히 오늘 찾아온 이유가 있습니까?” 물음에는 “어제도 그제도 언론보도가 나서 오늘 왔다”고 했다. 재차 “오늘이 배치 결정 후 딱 1년 되는 날이어서 여쭤본 겁니다. 고려한 겁니까?”라고 묻자, “고려하지 않았다”는 짧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많은 성주군민이 기억하는 7월 13일의 의미를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다시 성주읍으로 돌아왔다. 저녁 7시 무렵, 성주평화나비광장(성주군청 앞 주차장) 한켠에는 커다란 솥이 흰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배숙희(65) 씨는 새벽부터 닭백숙 200인분을 준비했다. 원불교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숙희 씨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국수, 어묵탕, 국밥, 우뭇가사리, 돼지고기찌개···. 숙희 씨는 그동안 촛불 집회 참여자들에게 갖은 음식을 선보였다.

▲배숙희 씨(가장 왼쪽)가 집회 전에 먹을 닭백숙을 준비하고 있다.

“얼른 날이 추워졌으면 좋겠다. 국밥 준비하게” 새침하게 말하는 숙희 씨 옆에서 “언니야, 겨울까지 할라고? 얼른 끝내야지!” 지청구가 날아들었다. “이거야 끝나도 더 할 일 안 있겠나” 숙희 씨가 말하자, “그건 그렇네, 군수도 내보내야지” 지청구를 보냈던 주민이 말을 받았다.

저녁 7시 30분, 이재동 성주군농민회장이 평화나비광장 무대 앞에 모습을 보였다. “아저씨~!” 린(11)이가 그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 회장이 팔을 벌리고 주저앉으며 활짝 웃었다. 벌어진 두 팔 사이로 린이가 사라졌다.

▲촛불 집회가 시작하기 전,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작년 7월 13일부터 매일 군청 앞마당을 밝히던 수천 개 촛불이 조금씩 줄어들 때, 린이에게는 집회장에서 함께 놀 친구들이 조금씩 줄었다. 집회장에서 함께 놀던 반 애들은 이젠 학교에서나 만날 수 있다. 그 친구들은 이제 ‘촛불집회가 시끄럽다’고 하고, ‘사드 배치 해버려라’고 해서 린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린이는 촛불집회 끝나면 어떨 것 같애?”
“음···심심할 것, 아니 적응 안 될 것 같아요”
“심심해서, 적응 안 되는 거구나. 그럼 어떻게 됐음 하는데?”
“사람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안 끝났으면 좋겠어?”
“아니요, 사람이 많이 모여서 끝났으면 좋겠어요”

저녁 8시, 촛불이 키운 공식 사회자 이재동 회장이 무대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에헤이 닭죽 먹은 거 다 어디갔뿠노,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네, 어제 전야제 잘했지요? 오늘이 정말로 1주년 날입니다. 맞습니까? 오늘 366일째입니다. 2년차를 맞이하는 첫날, 사드배치 철회 성주촛불문화제 시작하려고 합니다”

평상시보다는 2배 정도 많은 2백여 촛불이 불을 밝혔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비례)도 촛불 하나가 됐다. 어느 때보다 반갑게 주민들이 그를 맞았다. “전 세계가 성주를 바라보고 있고, 이제 성주는 덩치 큰 강대국들이 바라보는 세계의 중심이 됐다” 김 의원이 말했고, 세계의 중심 성주 주민들이 호응했다.

집회는 오래 계속됐다. 그동안 무대에서 노래로 함께 했던 예술가들이 돌아가며 무대를 꾸몄다. 월요일의 가수 김미영, 화요일의 가수 진금염, 금요일의 가수 황성재 씨가 무대에 올랐다. 성주성당 평화위원회, 평화를 사랑하는 예술단, 추운 겨울 같은 난로 옆에서 촛불을 든 주민들이 만든 ‘9번 난로’, 통기타 모임 예그린도 힘을 보탰다.

아들 율이가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업고 촛불 집회에 참석했던 배선혜(37) 씨도 오랜만에 촛불을 들었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던 아들은 이제 자기 고집이 생겨 가만히 있길 싫어한다. 아들 뒤를 쫓아다니느라 평화나비광장에 나오지 못했던 선혜 씨는 “오늘은 나와야 할 것 같아서” 아들을 둘러업고 촛불을 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커요. 정말 정신력이 대단들 하신 것 같구요. 우리를 대신해주는 느낌을 많이 받죠. 저흰 좀 힘들면 안 나오는데, 생각이 깊은 분들이죠. 오랜만에 나와도 환대해주시니까 감사하죠. 사드는 당연히 쫓아내야 하는거구요. 대선 때 홍준표 표 많이 나와서 욕 많이 얻어먹었는데요. 이런 일 겪으면서 나라 일에 관심 갖게 됐거든요. 더 좋아질 거고,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노래 부르고, 박수치고, 웃고, 울고, 소리치고. 시간이 후딱 흘러 밤 10시를 넘겼다. 항상 촛불집회 마지막을 책임진 평사단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 큰 북도 함께 갖고 올랐다. “구호 한 번 외치고 가겠다. 성주가 평화다!” 이재동 회장이 선창하자, 주민들이 따라 외쳤다. 북소리가 뒤따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