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평화버스 운전사 방민주, 참외찐빵 싣고 안산 세월호 분향소 찾다

아픈 곳으로 찾아가는 성주 평화버스, 세월호와 만나다

17:41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성주에서 안산으로 향하는 길, 난생처음 버스 운전대를 잡은 방민주(38) 씨는 승모근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차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은 데다 비가 내려 길도 미끄러웠다. 준비는 열심히 했다. 버스운전자격시험을 100점으로 통과했지만, 같이 버스에 탄 주민 20여 명을 생각하면 작은 실수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운전석 뒤에서 DMB로 가요프로그램을 보던 이민수(38) 씨는 연신 목을 주무르는 민주 씨를 보고 장난스레 한마디 한다. 자격시험을 99점으로 통과한 민수 씨는 운전 교대를 기다리고 있다.

“민주야, 목 아프제. 좀 있으면 마비 온데이”

▲파란나비 원정대 평화버스 운전대를 잡기 위해 버스 운전면허를 취득한 방민주 씨.

추석 연휴를 앞둔 대목 성주 장날 가게를 팽개치고 안산행을 결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휴에 만날 가족들은 민주 씨와 부인 김미영(37) 씨가 사드 투쟁에 나서는 것을 탐탁잖게 여겼다. 서울에 살다 아내의 고향으로 내려온 터라 장모님 말을 흘려듣기 어려웠다. 안정적인 직장 없이 전기 설비 시공 알바로 4인 가족 밥벌이를 하던 2014년 8월, 민주 씨는 장모님을 도와 참외 농사를 거들러 성주로 내려왔다.

세상살이가 워낙 퍽퍽했다. 주위에 신경을 쓰기 어려웠다. 그래도 세월호 참사는 민주 씨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 광화문에서 시공 작업을 하다 들어온 식당에서 민주 씨는 MBC의 전원 구조 오보를 보고 안심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오보 때문에 구조 작업에 차질이 생겼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세월호 보도를 보며 아들 방글이(10)와 글찬(7)이를 떠올렸다. 유가족의 마음을 상상하면 밥을 삼키기도 죄송스러웠다.

충북 충주시를 지나며 비가 개자 한시름 놓았다. 휴게소에서 민수 씨와 교대한 민주 씨는 같이 가고 싶다는 아이들 생각에 입꼬리를 올렸다. 27일 오전, 민주 씨의 참외찐빵 가게가 있는 성주시장에 김항곤 군수가 온다는 소리에 충동적으로 가게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아니꼬웠다. 사드를 제3부지에 들여놓는데 일조한 군수가 명절에 인사하러 시장을 찾는 것도 싫었다. 문을 닫고 민주 씨는 숙성된 반죽에 팥과 치즈를 넣었다. 아이들이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안산에 간다고 대답한 민주 씨. 사드 사태가 터지고 나서 아이들과 부쩍 대화를 많이 했다. 세월호 이야기도 많이 나눈 터라 세월호 참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1박 2일 캠프를 가야 해서 이번에는 따라오지 못했다.

▲빵을 만들고 있는 김미영(왼쪽) 씨와 방민주(오른쪽) 씨 부부. [사진=방민주 씨 페이스북]

평화버스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로 접어들었다. 단원고로 향하는 세무서 사거리, 단원구청을 지나 정부 합동분향소로 가는 길, 가로수에는 시민들이 걸어놓은 노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진상규명, 이제 제대로 시작합시다”, “진실을 반드시 밝히고 책임을 물읍시다”. 성주에 걸린 사드 반대 현수막도 떠올랐지만, 세월의 때가 한층 깊었다. 민주 씨는 성주 주민과 함께 분향소에 들어가며 동남청년단 모자를 벗어 손에 쥐었다. 영정 사진이 가득했다. 민주 씨는 눈시울을 붉히다가도, 이곳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진을 연출했던 장면을 떠올라 화를 삭였다. 고인에게 부치지 못한 수많은 편지를 보며 유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세월호 유가족도 성주 주민을 맞이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지난 9월 7일 사드 발사대가 들어오는 날 <평화나비효과>를 관람했다. 유가족 권미화(45) 씨는 말했다.

“현장에 못 가서 죄송합니다. 유가족이 드러내고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드는 임시배치라고 하는데, 찬성도 반대도 반반입니다. 유가족도 생각이 저마다 다릅니다. 휘둘리지 마시고 끝까지 싸워주세요. 건강 지키고 생명 지키는 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 경찰 진압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우리도 방송과 언론으로부터 종북몰이도 당해봤습니다. 저희도 대한민국의 안전을 바랍니다. 긴 싸움에 지치지 말고 서로 힘을 합쳐요. 새 정부에서 많이 바뀌는 것 같지만 앞서 저지른 일이 너무 많네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웁시다.”

힘내라고 응원하면서도 “우리와 다르다”라고 하는 다른 유가족의 말도 들었다. 한 유가족의 말. “우리 지역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이 있지 않나요. 우리와 결이 다릅니다. 성주는 이기면 땅을 찾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이겨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픔은 같지만, 결이 다릅니다. 신념은 버리지 마시고, 힘내세요.”

민주 씨는 그 심정을 어렵지 않게 수긍했다. 결이 다른 것도 맞고, 같은 아픔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분향소를 나서는 길, 지역 시민단체 사람이 넌지시 귀띔했다. “어제(26일), 오늘(27일) KBS와 MBC노조에서 여기 다녀갔거든요···”

저녁을 빵으로 때우고 안산 중앙역 앞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그곳에도 사드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이 있었지만, 파란나비 깃대를 잡은 민주 씨는 인구 70만 명의 도시 안산 광장 복판에 서서 잠시 쓸쓸함을 느꼈다.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팍팍한 것 같았다. 평화버스 마련 후 첫 운행, 평화를 외치는 길이 생각보다 더욱 험난할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드가고 평화오라’라고 적힌 파란색 몸자보를 두른 주민들이 보인다. 사드 투쟁을 알리는 전단을 안산 시민에게 나눠주고 있다. 그들도 같은 기분일 것이다. 혼자였으면 시작도 못 했을 길이다. 하지만, 성주에 와서 함께 평화를 외치는 주민들 생각을 하면 이제는 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없게 됐다.

▲안산시내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깃발을 든 방민주 씨

광장에 모인 안산 시민들은 민주 씨가 낱개 포장해놓은 참외찐빵을 받아들었다. 그 찐빵은 전자레인지나 찜통으로 한 번 더 데워야 한다고 안내했는데, 벌써 입에 물고 있는 사람도 있다. 민주 씨는 다른 상상도 했다. 평화버스를 따라다니는 푸드트럭을 만들어야겠다고. 그래서 찐빵에 온기를 담아서, 사드 반대를 위해 성주에 연대온 여러 지역을 찾아 나눠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