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철호 칼럼]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진실 접근 막기 위한 수단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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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청와대 회의실, 대통령을 향해 앉은 장관과 수석비서관의 자유를 잃어버린듯한 눈동자들. 토론이라고는 아예 없는 일방적 경청.

[사진 출처=청와대]
[사진 출처=청와대]

당신들은 왜 우리 모두가 획득한 자유를 당신들의 권력놀음 때문에 상쇄되고 위축되게 해서 모든 사람을 창피하게 만들고 자존심 상하게 하는가.

월급을 주는 국민이 아닌 엉뚱한 데 가서 차려자세하고 있는 사람들. 항상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당당한 장관, 수석 한 사람 없는 회의. 우리 국민 어느 누가 그러한 권위적이고 비효율적 회의를 허용한 것인가? 민주주의는 하나의 정치 방식이다. 바로 이러한 행위 때문에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이러한 회의방식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을 보호해 줄 정책이 과연 나올 수나 있겠는가? 민주주의가 수포가 된 데는 최고 권력자의 반민주적인 성향이 그 원인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허다하다.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 특별한 일 없이 사시사철 휘날리는 태극기들. 대통령 한마디에 어디서 이렇게 많은 태극기를 갑자기 구했을까? 돼지국밥집 아줌마 이야기는 “좋은 게 좋은 거지요. 달라고 해서 달았어요.” 한다.

우리는 지난 시절 대통령이 재래시장에 자주 나타나면 재벌에 대한 특혜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정부가 세상천지에 국기를 내걸 때는 강자의 이익을 위해 약자의 이익을 제한하고자 할 때나 아니면 어떤 자기 목적을 관철하고자 할 때란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당장은 노동법 개악과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나타나고 있다. 어처구니없이 이것을 저들은 개혁이라는 용어로 선전하고 있다.

“우리 대통령 고집이 세어서 누구도 못 이깁니다. 유승민이가 져야지요. 우리 대통령 정치 9단이잖아요.” 박사들의 TV 토론 내용이다. -아.

“집권당 최고위원회의 키 크고 멀쩡하게 생긴 자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청와대를 향해 용비어천가를 불러댄다.” -아, 집에서 누군가 볼 텐데!

“MBC 고영주 이사장, 검사 지내고 그 나이 되도록 공산주의 개념도 모르는 것 같다. 유럽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만 되면 다 아는 개념인데.” 참-아

지금 한국사회 지배세력은 고등학교에서 그 생각들이 콱 멈추어선 사람들이라. 그것도 수업 후 남아서 변소청소나 해야 할!

박근혜 씨는 어린 시절을 아버지 앞에 와서 충성을 맹세하는 정치군인을 보며 자랐으며,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아버지 모습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받아들였고, 절대적 권위와 복종 또한 백성이라는 다스림의 개념을 자기 내면화 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는 노동법 개정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진정으로 사회를 위한 개혁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과 리어왕 등을 보면 어릴 때 성격은 평생을 가는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프로이트 역시 특별히 자기 개인의 노력이 없는 한 아버지의 인격은 평생 자신의 내면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예가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폭정을 일삼던 왕을 보면서 그의 아들 태자는 역시 아버지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 태자는 내가 왕이 되면 또다시 백성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며 스스로 왕관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버린다.

왜! 우리에게 이러한 반성이 없는가? 지금이라도 나 때문이라는 미안함이 조금도 없단 말인가! 이러한 선택을 한 국민은 왜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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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국사 교과서의 일부.

지금 박근혜 정권이 주장하는 노동법 개정과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진정한 배후는 재벌의 이윤과 그 이윤의 일부를 국가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서민에게는 깊은 구렁이에 빠진 지렁이는 가만히 놔두어도 기어오른다는 모든 산업국가가 폐기한 천박하고 미개한 ‘낙수 효과’ 정책을 유지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저들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결국, 인간이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극우 보수세력을 향해 열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제 우리는 분배가 없는 경제성장은 우리 노동자, 서민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하며, 군사독재정권의 후예들이 들고 있는 태극기와 세월호 집회 때 우리 손에 들려 있던 태극기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때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힘과 힘의 대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함철호 칼럼
불안한 동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