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삶은 행동으로 쓰는 것” 어른을 위한 동화 ‘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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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이가 든다. 노력하지 않아도 해마다 나이를 먹는다. 그런데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가장 어려운 일은 ‘어른’이 되는 일이다.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다. 어른들은 크면서 겪는 일이라고 별거 아니라고 말하지만 성장은 아프다.

영국의 열세 살 소년 코너(루이스 맥더겔)는 삶이 버겁다. 엄마(펠리시티 존스)는 시한부다. 치료법은 모두 실패하고, 마지막 방법을 써야 한다. 아빠(토비 켑벨)는 이혼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코너는 병에 걸린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는다.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외할머니(시고니 위버)는 완고하며 불쾌한 존재다.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얘기가 학교에 퍼진 뒤엔 학교에서도 외톨이가 된다. 교사들은 코너가 숙제를 안 해도 혼내지 않는다. 친구들은 코너를 멀리한다. 코너는 되뇐다. “나를 중심으로 아무도 감히 다가오지 못하게 지뢰로 둘러싸인 지역이 생긴 것 같다.” 열세 살 소년은 선명하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들에 꽉 눌려 있다.

코너를 괴롭히는 유일한 존재는 우등생 해리(제임스 멜빌) 일당이다. 해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 코너를 때린다. 학교에선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선 투병 중인 엄마를 보살피는 코너는 매일 밤 낭떠러지에서 엄마의 손을 놓치는 악몽에 시달린다. 반복되는 악몽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코너는 엄마와 함께 영화 <킹콩>을 보면서 거대 괴수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12시 7분. 창가의 나무가 괴물(리암 니슨)로 변해서 코너를 찾아온다. 꿈이려니 싶었지만 침실바닥에는 나뭇잎이, 열매가 뒤덮여있다. 하지만 괴물이 무섭지는 않다. 삶에 지친 코너에게 괴물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코너에게 괴물은 세 가지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새어머니를 내쫓고 왕국을 되찾기 위해 사랑하는 신부를 죽인 왕자, 두 딸을 구하고자 믿음까지 저버렸던 목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람. 그리고 말한다. “세 가지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네가 진실을 말할 것이다.”

코너의 꿈에 괴물이 등장한 이유는 코너가 가슴 속 깊이 감춘 진실 때문이다. 엄마는 치료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어린 아들을 위로한다. 코너도 엄마 앞에서 괜찮아질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린 아들은 안다. 코너가 직면하기 싫었던 진실은 아픈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를 바랐던 죄책감이다. 코너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또 엄마가 죽기를 바란 모순된 마음을 용서할 수 없다. 괴물은 코너에게 참지 말고 맞서라고 속삭인다. 코너는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괴물의 힘을 빌려 해리에게 주먹을 날리고 외할머니에게 반항을 한다. 그러면서 성장통을 밟아간다.

<몬스터 콜(2016년)>은 열세 살 소년의 이야기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깝다. 분노·죄책감·슬픔 등 뒤섞인 감정을 표백 과정 없이 그려내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은 어둠을 향해 자맥질치는 만큼 묵직하게 가슴을 울린다. 나무 괴물이 들려주는 세 가지 동화에 눈과 귀를 열면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괴물이 들려주는 동화는 권선징악의 흔한 스토리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기 쉽지 않다. 현실에서도 무조건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은 없다. 선과 악이 동시에 마음에 깃드는 건 어려서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지닌다. 하지만 진실이자 거짓인 모순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괴물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러니에 대처하는 길은 오로지 진실을 목도하는 수밖에 없다.

괴롭지만 진실을 말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위로와 평화를 얻는다. 괴물은 말한다. “삶은 말로 쓰는 게 아니다. 삶은 행동으로 쓰는 거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네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몬스터 콜>은 영국도서관협회가 선정하는 카네기상과 케이트 그리너웨이상을 동시에 받은 아동청소년소설 <몬스터 콜스>가 원작이다. 카네기상은 상금은 따로 없으며, 순수하게 아동과 청소년에게 좋은 작품인가만을 평가해 영국도서관협회 사서들이 선정한다. 케이트 그리너웨이상은 영국에서 출판된 최고의 그림책에 준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 시본 도우드의 미완성 유작을 소설가 패트릭 네스가 완성시켰다. 삽화는 일러스트레이터 짐 케이가 그렸다. 책의 말머리에 들어가는 ‘작가의 말’이 ‘작가들의 말’로 적혀 있다. <뉴욕 타임스>가 2011년 최고의 청소년책으로 선정했다. 또 2012년 2월에는 영국 어린이 8만 3,000여 명이 투표로 뽑은 레드하우스 북 어워드 수상도서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됐다. 부모의 이혼과 죽음 등 청소년들과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를 환상을 통해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2007년)>으로 데뷔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 스크린에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