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일그러진 욕망의 종착점, ‘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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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2016년)는 개봉 전까지만 해도 그해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다. 하지만 손익분기점(누적 관객 수 360만 명)을 넘지 못했다. 누적 관객 수는 259만 명에 그쳤다. 흥미로운 점은 2년 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영화 내용과 유사한 실제 사건 국제마피아파 게이트를 다루면서 VOD 다운로드 수가 급격히 늘었다는 것이다. 추가 수익이 발생하면서 뒤늦게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겼다고 알려졌다.

<아수라> 개봉 초기 평론가들 사이에서 혹평이 쏟아졌다. ‘남자들끼리 어깨동무하고 같이 지옥 가는 영화’가 너무 과하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일부 평론가는 영화에서 여성은 주된 역할도 없이 남성들만 등장한다는 이유로 힐난했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한겨레신문>에 ‘<아수라>, 또 하나의 ‘알탕 영화’’라는 칼럼을 실었다. 그는 남자들만 부글거리는 영화라는 뜻으로 ‘알탕 영화’라고 비난하고, 여성혐오가 너무 심해 여자들을 배재하고 개저씨들만 등장시켜 ‘개저비엘’이라고도 했다.

김현민 영화 저널리스트는 <아이즈(ize)>에서 ‘한없이 지루해진 지옥도’란 제목으로 한국 영화의 남초 현상이나 장르의 쏠림 현상을 <아수라>에 빗대어 비판했다. 위근우 씨도 ‘<아수라>는 ‘알탕 영화’인가, 오해받은 수작인가’라는 제목으로 비난했다.

백승찬 기자는 나직한 인터뷰라는 코너를 통해 <아수라>의 제작사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에게 “젠더 문제가 중히 여겨지는 요즘 분위기와는 살짝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질문으로 건넸다. 이들의 평론에 만듦새나 서사, 전개에 대한 지적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아이스하키 여자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를 다룬 <국가대표2(2016년)>와 사상 최초 남북단일팀 출전 이야기를 그린 <코리아(2012년)>, 여성 투 톱 주연을 내세운 <걸캅스(2019년)>에 호평이 쏟아졌다. 만듦새나 개연성 따위는 얘기하지 않고 정치적 올바름과 신파 감동을 잣대로 잰 결과다. 남성적 색채가 짙은 영화들 사이에서 여성 서사 또는 여성 주연 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영화적 재미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아니다.

<아수라>는 남성들의 폭력과 추잡한 실체, 비루한 권력의 민낯으로 가득하다.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는 음흉한 인물이다. 겉으로는 당당한 시장이지만 뒤에서는 온갖 범죄를 저지른다.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박 시장의 뒤를 봐주고 그 대가로 돈을 챙긴다. 독종검사 김차인(곽도원)과 수사관 도창학(정만식)은 도경의 약점을 잡아 박 시장의 뒤를 캔다. 이들 사이에 낀 도경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결국 박 시장과 검찰의 갈등은 커지고 막장 파국을 맞는다.

영화는 선악의 대결 구도가 아니다. 악인들이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물어뜯는다. 일말의 양심은 없다. “나쁜 짓 하지 마”라는 이는 생의 막바지에 선 말기암 환자 도경의 아내 윤희(오연아) 뿐이다. 아이러니한 건 죽음을 목전에 둔 윤희를 제외한 나머지가 맞이하는 최후다. 서로를 해하면서까지 욕심을 내는 이들 모두 윤희보다 먼저 죽는다.

<아수라>는 김성수 감독의 의도대로 추악한 인물들이 만들어낸 폭력의 생태계가 자극적으로 비춰진다. 잔혹한 폭력과 높은 욕설 수위, 도경의 후배 문선모(주지훈)의 급작스런 변화를 단점으로 꼽는 이들도 있는데,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개봉 당시 몰매를 맞은 <아수라>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회자됐다. 특정 후보와 연관 지어 ‘현실 고증·미래 예측 영화’라고도 했다. 픽션에 불과한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믿는다. 이는 정치권을 향한 신뢰가 얼마나 낮은지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하는 게 좀 더 진정성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를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보는 이유는 문제를 직시하고 교훈을 얻고 대안의 필요성을 찾기 때문이다. 도가니(2011년)가 그랬고 아불시약신(2018년)이 그랬다.

<아수라>에서 개발 광풍과 개발 행정의 무참한 손길이 모든 비극 아래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한민국에서 땅은 일그러진 욕망의 종착점이다. 영화 속에서 개발은 곧 폭력과 협잡의 결과물이었다. 19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휩쓸고 있는 부동산의 잔상은 영화 속 미장센으로 남아 있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