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은 대구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 4. 에스엘

미래차 산업에 발빠르게 대응한 에스엘
국내 헤드램프 시장 점유율 66.9%
3세 경영체제 속 오너 임금 상승률 187%
코로나19로 주식시장 폭락 속 4세 경영 준비
꾸준히 고용은 늘려와···남성이 86%
남성 대비 여성 임금은 88%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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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구시가 추진한 신산업 정책이 영향일까, 2013년 대비 2021년 대구 상장사 시가총액 상위 7개 기업에 못 보던 기업이 여럿 이름 올렸다. 전통 제조업 기업이 아니라 미래차, 의료 같은 신산업 분야의 기업들이다. 새로운 산업의 성장은 기업의 성장을 가져왔지만 시민의 삶의 질도 함께 높였을까? 상장사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을 통해 신산업의 성장이 가져온 대구시민의 변화도 살펴본다.

[신산업은 대구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 1. 어떤 변화
[신산업은 대구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 2. 엘앤에프
[신산업은 대구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 3. 대구은행

자동차 업계의 전환 흐름 속 전기차·수소차 등 미래차 사업 대응력이 생존을 가르고 있다. 변화는 산업구조 아랫단에서 먼저 체감된다. 부품회사들은 미래차 부품 수가 내연기관차보다 적어 이전만큼의 매출을 올리기 어려운 데다, 해외 업체보다 뒤쳐지는 기술력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에스엘은 상대적으로 ‘대응력’ 있는 자동차 부품 회사로, 자동차 산업의 전환기에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성장의 열매가 창업주 일가에 집중되고 남초 조직의 보수적인 문화가 ‘좋은 일자리’라는 평가를 가로막는다.

미래차 산업에 발 빠르게 대응한 에스엘
국내 헤드램프 시장 점유율 66.9%

지난해 10월 류성걸 국회의원(국민의힘, 대구 동구갑)이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와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지역본부로부터 받은 ‘대구경북지역 자동차부품 업체(156개)에 대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자동차부품 기업 4곳 중 1곳은 전기차·수소차 등 미래차 관련 부품 생산 계획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기준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지역 내 제조업 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에 달하지만, 이들의 미래차 사업 전환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도 덧붙었다.

▲에스엘의 주력사업은 헤드램프다. 국내 헤드램프 시장에서 66%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한 기업으로 분류된다. 이미지=에스엘 홈페이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에스엘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한 기업에 속한다. 1954년 ‘삼립자동차공업주식회사’로 설립된 에스엘은 대구경북 최대 규모 자동차 부품 제조사다. 1988년 11월 상장했으며 대구 본사를 거점으로 한국, 중국, 북미, 인도 등 총 16개의 계열사에서 자동차 램프와 새시, 도어래치 등을 생산한다.

공장은 대구 북구 검단동(대구공장), 경북 경산시 진량읍(진량공장),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성산공장), 달서구 대천동 전자공장 외 안산, 천안 시흥 등에 있다. 지난해 기준 램프 부문 매출액 82.5%, 전동화(샤시) 부문 12.0%, 기타부문 5.5%였으며, 현대차·기아 외에도 GM, 포드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램프 부문 매출 비중이 높은 건 에스엘이 헤드램프를 주력 사업으로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헤드램프는 미래차에서도 핵심 부품이다. 에스엘은 기존 헤드램프 제품 가운데 LED램프가 가장 미래차에 적합하다 보고 생산 비중을 확대해 왔다. LED램프는 전구를 사용하는 할로겐램프, HID램프보다 전력 소비량이 적어 에너지 효율이 높고 수명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발 빠른 대응은 실적 개선으로 드러난다. 국내 헤드램프 시장 점유율 66.9%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고,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늘고 있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지난해 매출액은 3조 11억 원. 전년(2조 5,050억 원) 대비 19.8%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1,105억 원으로 전년(931억 원) 대비 18.65% 늘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업계 전반의 변화 속에서 헤드램프는 비교적 시류를 타지 않는 부품”이라며 “미래차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지금의 시장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램프류는 부품 파손율이 타 부품에 비해 높아 애프터서비스용 제품 판매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LED 헤드램프 부문은 전력 소비량이 적어 에너지 효율이 높기 때문에 전망이 밝다”고 설명했다.

3세 경영체제 속 오너 임금 상승률 187%
코로나19로 주식시장 폭락 속 4세 경영 준비

하지만 안정적인 성장의 몫이 구성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3세 경영 구도가 자리 잡은 상황에서 지분 승계를 통해 4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는데 반해 보수적인 사내 분위기와 임직원 간 급여 상승률 차이 등 가족 경영이 갖는 한계가 오래 이어져 왔다.

에스엘은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자가 회사 지분의 62.46%를 소유한 채 창업주의 아들과 손자로 경영이 승계되어 왔다. 현재는 3세 경영체제에서 4세 경영체제로 승계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까진 장남 승계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졌다. 창업주 이해준 명예회장 뒤를 이어 이충곤 회장이 경영을 총괄해오다 지난 2020년 5월 완성차 업체의 단가 인하 요구를 방어하기 위해 진행한 역분식회계가 적발돼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이충곤 회장은 이 일로 가족 경영의 한계가 지적되자 지난해 3월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이 회장의 장남인 이성엽 부회장을 포함해 김한영 전무, 김정현 이사 3인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 중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이성엽 부회장은 25.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아버지 이 회장이 14.14%을 보유하고 있다. 이성엽 부회장의 동생 이승훈 전 에스엘미러틱 사장도 11.42%를 보유 중이다. 이 전 사장은 2018년 9월 일신상의 이유로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주식 시장이 급락한 2020년 3월 이 부회장의 장남인 이주환 씨가 주식을 대거 매입하면서 지분을 4.82%까지 높였다. 1997년생인 이 씨는 아직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지속적인 주식 매입은 경영 승계를 위함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외에도 친족이 2.83%를 갖고 있고, 에스엘서봉재단 3.71%, 김한영 전무 0.04%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이렇듯 아버지에서 아들로 경영승계가 이어지는 동안 기업의 실적이 올랐고, 덩달아 임원들의 급여도 크게 올랐다. 반면 직원들의 급여 인상률은 등기이사 인상률의 1/10에도 미치지 못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직원 평균 급여는 15.2% 인상했지만, 회장 급여는 37.4% 올랐고, 이성엽 부회장을 포함한 등기이사 3인의 평균 급여는 187.9%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01.5%, 영업이익은 74.4%까지 늘었다.

꾸준히 고용 늘려와···남성이 86%
남성 대비 여성 임금은 88%까지

성장세만큼 직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18년 2,200명이던 정규직 직원은 2019년 자회사(에스엘라이팅)와 합병하면서 3,654명까지 급증했다. 2020년에는 3,349명, 2021년 3,880명까지 늘었다. 동시에 비정규직도 늘었다. 2017년 31명이던 기간제 근로자는 2021년 466명까지 늘었다. 평균 근속 연수는 11.5년이다.

▲2017년, 2018년은 소속 외 근로자 데이터 없음. (기업공시 서식작성 기준 개정으로 소속 외 근로자가 공시대상 미포함에서 포함으로 변경됨)

성비 불균형과 임금 격차는 큰 편이다. 2021년 기준 전체 정규직 직원 3,880명 가운데 남성이 3,334명(86%), 여성은 546명(14%)이다. 같은 기간 램프 부문 남성 1인당 연평균 6,7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은 1인당 5,900만 원을 받았다. 전동화 외 기타 부문에서는 남성 1인당 연평균 7,4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은 1인당 5,900만 원을 받았다.

취업 플랫폼 ‘캐치’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에 대한 불만이 다수 올라와 있다. 주로 성과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것과 남초 회사에 다니는 여성 노동자의 고충이 드러나는 내용이다. 한국노총 금속노조 소속 노동조합이 1968년 설립되어 있긴 하지만 2018년 행정안전부로부터 노사문화대상을 수상하는 등 창업 이래 단 한 번의 노사 분규도 없었다.

에스엘 관계자는 “2021년 초 기간제 근로자 수 증가폭이 큰 건 신규 채용 규모가 컸기 때문”이라며 “신규 채용은 기간제로 뽑은 뒤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급여 차이에 대해서는 “램프 부문과 전동화 외 기타 부문의 급여에 차이가 나는 건 램프 부문 직원이 많기 때문이다. 현장 직원과 연구직 직원의 급여도 차이가 좀 난다. 남성과 여성의 급여 차이도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