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람의 앞으로 Afro] 코앞의 빈곤포르노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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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리카 사람이다~~” 작년, 목욕을 마치고 나온 5살 딸아이가 알몸에 수건을 하체에만 두르고 재밌다고 소리쳤다. 맙소사… 왜 그게 아프리카 사람이냐고 물으니 아프리카 사람들은 옷을 그렇게 입는다고 했다. 신발도 없어서 맨발로 다닌다고 했다.

“아니야, 옛날 사람들이나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입기도 하지만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옷을 다 그렇게 입는 건 아니야.”

아이는 자기 말이 맞다며 화를 낸다. 유치원에서 배웠고 책에서도 분명히 봤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설득해 보았지만 이미 아이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는 꽤 깊이 박혀버린 듯했다. 고작 세상을 4년밖에 안 살았는데.

“너 춤 잘 추는 다니엘 삼촌 알지? 그 삼촌도 아프리카에서 왔잖아, 그 삼촌이 벌거벗고 다녀? 신발도 신고 다니지?” 아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그제야 엄마 말에 수긍하는 듯했다.

엄마 직업상 아프리카를 또래보다 실생활에서 더 접하는 내 아이도 기존의 교육 속에서 알게 모르게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이 심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늘 미개하고, 불쌍하고, 안쓰럽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로의 이미지였다.

▲굿네이버스의 그림그리기대회 애니메이션 갈무리

굿네이버스는 전국 유치원을 통해 아프리카 친구를 주제로 동화 영상시청과 함께 그림편지쓰기 대회에 참가하도록 활동지를 배부했다. 그 속의 친구는 늘 마실 물이 부족하여 맨발로 물 길어 다니고 학교에 가고 싶지만 못가고 일을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기부를 부추긴다.

어떤 부모들은 그렇게 아이를 통해 불쌍한 친구에게 기부하고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지 않아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난한 친구를 돕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스스로 좋은 교육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거기에 우리는 저들보다 낫다는 우월감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혹은 그로 인해 상처받는 바로 내 주위의 다문화 가정과 친구들은 없을까? 기부를 위해 단편적인 모습을 보편적으로 왜곡하며 아프리카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는 이른바 ‘빈곤포르노’는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었고 생각보다 더 어린 나이 때부터 노출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선입견은 차별로 이어진다.

아프리카 출신 아티스트를 노동착취하며 인금체불과 인종차별을 일삼아 한때 떠들썩했던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 사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정치인의 아프리카 비하 발언은 아프리카를 우리보다 열등하고 기부의 대상으로만 비춘 빈곤포르노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다.

아프리카는 55개국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다. 그만큼 문화도 인종도 계절도 사실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흔히 한여름 대구를 일컫는 대프리카라는 말도 대구가 아프리카만큼 덥다는 뜻으로 아프리카는 덥다는 선입견에 따른 것이지만 한때 대구에 살던 케냐출신 친구는 자기 나라는 별로 덥지 않고 대구의 여름은 너~무 더워서 못 살겠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안에 있는 레소토라는 나라는 고지대로 날씨가 서늘하고 눈도 온다. 그냥 적도 가까이 있는 나라들이 더운 것이지 아프리카가 다 더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 하긴 나도 아기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 아프리카 출신 산모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흑인 산모가 없어서 헛소문인가 했더니 남아공에서 온 그녀는 아시아인 같은 외모를 가져서 ‘으잉? 남아공 사람 맞아?’ 했던 경험이 있다.

특강으로 찾아갔던 초등학교에서 음악교과서에 동아프리카 케냐 노래를 소개하며 삽화에는 서아프리카 만뎅전통악기들이 소개되고 아무리 신신당부해도 내가 참여한 아프리카 관련 교육영상에 자꾸 야생동물을 띄우는 것도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한계인 것 같다.

그래도 요즘에는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려는 아프리카인사이트와 같은 아프리카 전문 NGO단체나 아프리카 전문가들이 이런 선입견을 개선하거나 빈곤포르노의 문제점을 알리는 대안을 찾으려는 캠페인을 지속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부족한 다양한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있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조금씩은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공연단체 원따나라도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문화순회사업 ‘신나는 예술여행’을 진행할 때 ‘예술로 만나는 아프리카’라는 제목으로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공연을 선보이고 상품을 건 아프리카 상식퀴즈로 아프리카가 얼마나 큰 대륙이며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그 다양함 속에서도 사람 사는 것이 별반 다르진 않으며 특히 전통문화를 들여다보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며 조금이나마 학생들이 이를 통해 아프리카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바른 정보를 찾아보기를 기대한다.

개선은 문제를 인지하는 데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알던 대로만 가르치지 말고 우리아이들에게는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다문화 시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코앞에 있는 빈곤포르노를 알아채자.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개선과 비전을 제시하는 NGO 아프리카인사이트)

이보람 burst84@naver.com
‘공연예술가. 상세히는 서아프리카 공연단체인 원따나라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으로, 또한 타악기 연주자로 공연과 창작활동을 하고 있고, 젬베라는 악기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사명감으로 교육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올해 6살인 에너지 끝판왕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