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고래가 되어 대통령 7시간 밝히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요”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사람들 이야기 (9) 단원고 2학년 3반 어머니를 만나다

14:18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사람들 인터뷰를 8번째까지 진행하고, 유가족 부모님과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만 해도 이런 정국이 될지 미처 몰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온 국민이 주말마다 거리에 몰려나와 대통령 즉각 퇴진과 구속 수사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도 탄핵 사유를 두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세월호 7시간을 어떻게든 모면해 보려고 발버둥을 친다. 애초에 국민의 소리에 귀를 닫은 대통령은 탄핵이 결정 나더라도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둥, 여전히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소리들을 내뱉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만난 2학년 3반 최윤민 학생의 어머니 박혜영(이하 윤민 어머니/54세세) 씨, 유예은 학생의 어머니 박은희(이하 예은 어머니/47세) 씨, 정예진 학생의 어머니 박유신(이하 예진 어머니/45세) 씨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지금까지 진실을 밝히려는 자리에 한결같이 계셨던 분들이다.

▲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유가족들이 대구에 내려와서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을 벌였다(2014.7.9.) 왼쪽 사진 왼쪽 박혜영 씨, 오른쪽 박은희 씨/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학년 3반 부모님들이 대구에 처음 온 것은 2014년 여름 세월호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기 위해 유가족들이 전국을 다닐 때였다. 그 여름, 부모님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숫자, ‘희생된 3반 학생들 이름이 빼곡히 적힌 숫자 3’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대구에 오셨다.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지키고 선 서명판 옆에서 피켓을 들고 서 계시다가 후두둑 눈물을 흘리던 어머님들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후 여러 간담회와 활동이 있을 때마다 3반 부모님들이 대구에 오셨고, 안산합동분향소와 광화문 집회에 참가할 때마다 부모님들을 찾아뵈었다. 그렇게 함께 아파하고, 함께 싸우면서 지내온 동안 세 번의 봄과 여름, 겨울이 지나가고 이제 곧 1,000일이 되어간다.

▲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어머니 세 분을 모시고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왼쪽 아래 박유신 씨, 오른쪽 위 박은희 씨, 오른쪽 아래 박혜영 씨. (2016.12) [사진=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원회]

사랑하는 딸을 잃은 단원고 2학년 3반 세 분 어머니의 인터뷰 녹취록을 풀어 놓고 창밖을 보니, 어느새 어둠이 잔뜩 내렸다. 건물마다 등이 밝혀지고, 옷을 잔뜩 껴입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밝혀진 거리를 무심코 바라보는 동안에도 세 어머니의 목소리,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난다. 그리고 이건 뭘까.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잘 몰랐던 내 마음, 따뜻한 듯도 하고 아픈 듯도 하고, 눈물과 웃음이 같이 일렁이는 이 마음.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머니들과 함께 안산 합동분향소 기억의 방에 둘러앉아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어머니들께 변화한 시국을 접하면서 드는 심경, 건강과 근황을 먼저 여쭈었다.

2학년 3반 반대표를 맡아서 활동하고 계신 윤민 어머니는

“그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을 함께 해 온 주변 분들이 부모님들이 이만큼 버텨주셨으니 국민이 이렇게 호응해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렇게 국민이 우리 이야기에 동의해 주고, 거리에 나와 주는 것이 정말 고맙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솔직히 서운한 마음도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나쁘다는 걸 아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월호 진실이 국민 힘으로 밝혀질 것 같아 기대하고 있지만, 텔레비전에 다시 세월호 침몰 장면이 자꾸 나오는 것은 정말 괴로워요.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고문 같은 장면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다시 불면증이 찾아와서 새벽 3시, 4시가 되도록 잠을 못 이룹니다. 혼자서 거실을 걸어 다니고. 미국에 사는 세월호 활동가들과 쪽지를 주고받고, 어떤 날은 멍하니 홈쇼핑 방송을 보고 앉아 있을 때도 있어요.

대통령의 7시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프로포폴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어쩌면 정말 저깟 일을 한다고 우리 애들 목숨을 구하지 않았나, 허망해집니다.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정작 진실이 밝혀지면 우리 유가족들은 정말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그런 중에도 토요일이면 광화문에 갑니다. 심하게 아팠던 날 한 주를 빼고는 다 참석했어요.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거든요.”

▲ 왼쪽 예은 어머니, 오른쪽 윤민 어머니. (2016.12) [사진=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원회]

윤민 어머니의 불면증 이야기에 이어 예은 어머니도 “영상을 자꾸 봐서 그런지 요즘 들어 예은이가 꿈에 더 자주 찾아온다. 그런데 이상하게 예은이가 힘이 없어 보여 안타깝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제부터 정말 제대로 시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우리 가족들과 몇몇 분들의 외로운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국민과 함께 싸울 수 있는 상황이 되었잖아요.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유가족이 대통령의 7시간을 이야기하면 마치 범죄자 취급을 당했어요. 이제는 모든 국민이 대통령의 7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활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부모님들이 연락하시고, 광화문 집회 참가자에게 간식비라도 보태겠다는 말씀을 하세요, 지난주에는 예은이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집회에 참가하셨어요. 이 기회를 놓친다면 또 몇 년을, 아니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저절로 열심히 움직이게 됩니다.”

5주째 한 번도 안 빠지고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예진이 어머니는 지난 11월 12일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가 발을 헛디뎌 아직 움직임이 수월하지 않다. 윤민 어머니 말씀처럼 예진 어머니도 순간적으로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한다.

“요즘 광화문 집회는 정말 양반이잖아요. 지난 2년 넘도록 우리 부모들을 생각하면 정말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싸웠어요. 경찰도 마찬가지고요. 그랬으니 ‘진작 좀 나서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그래도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고 우리 아이들 진실을 밝히는 게 몇 년이라도 당겨질 것 같아서 요즘 저는 좋아요. 그리고 일부러 저에게, 가족들에게 ‘참 고생했다, 지금까지 버텼으니 국민이 알아주는 거야. 대단해’라고 말해줍니다.”

세 어머니는 부모들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윤민 어머니 가족은 자매들, 예은 어머니네는 큰딸 하은이는 물론 할머니와 이모까지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예진이네는 예진이 동생 의찬이가 처음으로 지난 집회에 참가했다고 한다.

딸들을 항상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내온 윤민 어머니는 요즘도 “보호복처럼 딸들에게 노란 옷을 입혀서 집회에 간다”며 “큰딸 윤아 씨가 강인해서 든든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예은 어머니는 “언젠가 한 번 가족대열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하은이가 자꾸 맨 앞에서 행진하자고 한다”며, “부모가 아이들에게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두 팔을 벌려 아이들을 챙겨 왔는데, 이제는 애들이 너무 빨리 달려서 막 쫓아간다”고 말하며 웃으신다.

예진 어머니는 의찬이와 함께 처음으로 집회에 참가하면서 걱정도 되고 마음이 쓰였는데, “의찬이가 오히려 집회 물품과 저녁까지 든 무거운 가방도 메고, 아빠 대신 엄마가 행진대열에서 떨어질까 봐 연신 돌아보고 챙기더라”는 자랑을 한다. 그리고 “의찬이가 구호도 잘 외치더라”며 아마 제 속도 좀 풀렸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잊지 않고 한다. 이 대목에서 아주 약간이지만 엄마들은 아빠들 흉을 조금 보기도 했다^^.

역시, 엄마들은 자녀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많이 웃는다. 그동안 아프다는 속내를 잘 보이지 않기도 하고, 쫓아다니는 부모 형편에 어쩌면 방치한 듯 마음이 아팠던 엄마들이 웃으니 나도 참 좋다. 어떤 집은 이번에 아이가 집회에 가자고 해서 부모들이 함께 왔다는 이야기, 요즘 청소년은 집회에 참가하는 게 개념 있는 행동이라며 학교에서 서로 자랑한다는 이야기. 젊은 청년들, 가족들이 광화문에 오면 꼭 인증샷을 찍고 가더라는 이야기, 가족들이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보면 가방에 든 것, 뭐든지 꺼내서 주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어머니들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에 맺힐 하나의 이야기를 예은 어머니가 하셨다.

“우리 예은이가 촛불집회에 참 가고 싶어 했었는데, 살아 있을 때 데리고 가지를 못했어요. 그런 줄 몰랐는데 예은이가 개념 있는 발언을 한 연예인도 좋아하고 그랬더라고요. 요즘 집회에 가족이 다 참가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우리 예은이만 없구나’하는 생각.”

지난 12월 3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등에 태우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고래를 보며 우리는 모두 한 마리 고래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하늘에 별이 된 우리 아이들이 그 고래를 보고 있기를, 우리 촛불이 뒤늦었지만, 고래를 헤엄치게 하고, 아이들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빌었다. 예은이도, 예진이도, 윤민이도 부디 함께 보았기를!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예은 어머니가 다시 한번 “돌아오는 토요일 집회 때 가족들이 구명보트를 입고 행진하자”는 말씀을 하신다. 반 대표들이 모여서 한 회의에서는 영정사진이나 구명조끼 대신 아이들 얼굴이 그려진 노란 망토를 둘러쓰고 청와대 앞 청운동 동사무소 앞까지 행진하기로 했다는 윤민 어머니 설명이 이어졌다. 조심스레 예은 어머니에게 구명조끼를 꼭 입고 행진하자는 건 어떤 마음인지를 여쭈었다.

예은 어머니는 “대통령이고 정치인이고 너무 정신을 못 차리니까, 그렇게라도 해서 알려주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쿠바 출신 아티스트 에릭 라벨로(Erik Ravelo)의 작품을 한국인이 패러디해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그림 [사진=세월호참사대구대책위]

“지금 정부나 대통령이 담화문 발표하고 행동하는 걸 보면 사람이 304명이나 죽었는데 마치 자기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처럼 움직여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예은이가 힘없는 모습으로 꿈에 자꾸 나타나니까 속이 상합니다. 예은이 마음으로 그 사람들한테 구명보트 입고 가서 따지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알려주고 싶어요. 애들이 지금 살아와서 그렇게 따질 수는 없으니까, 내 몸을 통해서라도 이야기 하고 싶어요. 구명조끼를 입고 예은이가 되어서 알리고, 말하고 싶어요.”

말씀은 강하게 하셨지만 예은 어머니도 어느 날 집회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참가한 시민을 보고는 놀라서 숨었다고 한다. 윤민 어머니도, 예진 어머니도 자식을 잃은 부모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텐데,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더 박차를 가해서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삭발을 하고, 한뎃잠을 자고, 아이들 영정을 들고 거리를 걷던 부모님들 모습이 떠올랐다.

앞서 윤민 어머니 불면증 이야기도 있었고, 단원고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기억력과 시력이 떨어지고, 이가 상하고 골병이 들어간다던 이야기가 생각나 정말 건강이 어떤지를 여쭈었다.

시력은 물론이고 청력도 떨어진 것 같다는 예진 어머니, 알고 보면 모두 임플란트 이를 해 넣었다는 윤민 어머니, 일반인들이 기력의 반을 쓰며 산다면 90%를 쓰고 사느라 누우면 기절하듯이 잠자리에 든다는 예은 어머니, 며칠씩 집회에 참가해도 괜찮더니 요즘은 하루만 집회에 참가하고 와도 몸살을 앓는다는 이야기, 가슴에 억울한 게 쌓여 내려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슬픈 이야기인데, 어머니들은 웃으면서 서로 흉도 보면서. 윤민 어머니 처방은 ‘약’, 예은 어머니 처방은 ‘잠’, 예진 어머니 처방은 ‘수~~ㄹ’, 거기에 ‘욕’도 처방하자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윤민 어머니 말씀처럼 부모들은 단단해지고 있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진상규명이 안 될 것 같아서 막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는 예진 어머니 말에 두 언니가 답했다.

윤민 어머니 말씀을 옮겨 본다.

“그동안 너무 당한 게 많아서 그런가, 엄청 기대하지는 않아요. 막 될 것 같지만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커서, 아예 상처받을까 봐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이렇게 스스로 주문을 걸기도 해요.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우리 부모들 마음이 점점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솔직히 2년 동안 우리가 얼마나 얻어맞았나요? 이번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그런 일이 설령 생긴다 해도 우리는 완전히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은 나도 누가 뭐라고 해도 상처받지 않아요. 누가 막말하면 막 가서 싸워야지 그런 생각을 먼저 합니다.”

두 어머니가 ‘무한긍정맨’이라고 별명을 붙여준 예은 어머니 이야기다.

“나는 반대로 ‘될 거다, 될 거다’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요. 그래야 내가 살 거 같으니까요. ‘우리가 이긴다, 국민이 이긴다, 진실이 이긴다’ 하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요.

민주노총 활동가 한 분이 일전에 그런 말을 했어요. ‘지난 한 달 동안도 울화통이 쌓이고 너무 힘들었는데 어머니들은 삼 년 동안 얼마나 힘드셨냐고, 이렇게까지 우리가 애를 썼는데 박근혜가 퇴진 안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온 종일 든다’고. 그래서 대답했어요. ‘우리도 그런 생각이 안 들었겠냐고. 그래도 삼 년 동안 버틴 건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니까,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긴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줬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말해줘야 해요. 밖에 있는 사람들하고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안의 절망과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2년 넘는 동안 대다수 국민이 침묵했지만, 나는 속으로 계속 생각했어요. ‘이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땅속에 있는 마그마와 같은 사람들이다. 어느 순간 한 곳으로 모여서 분출하는 시간이 있을 거다. 어느 때일지 내가 계산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그렇게 될 거다’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지금 그 마그마가 분출됐으니 잘해야지요. 미리 걱정한다고 바뀌는 건 아니니 나쁜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100% 믿고 가야지요.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우리는 또 새로운 길을 나서면 되지요, 기쁘게! ‘어,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새 길을 찾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인터뷰 말미에 한 이야기지만, 예진 어머니 이야기도 여기 옮긴다. 마치 두 언니 이야기에 대한 답처럼 이어졌던 말.

“참사가 일어나고 100일 됐을 때 광화문에서 가족들이 농성했었어요.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무섭게 친 날이 있었어요. 그날은 예진 아빠가 옆에 있었는데도 그렇게 무섭고 힘이 들었어요. 그날 이후 농성장에 한참을 못 나왔어요. 힘들어서. 나는 여기서 어른인데도 이렇게 무섭고 못 견디겠는데, 예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지난 2년여 세월호 싸움이 시원하게 뚫고 나오지를 못했잖아요. 그때그때 마다 힘이 들었지만, 그 100일 때보다는 힘들지 않았어요. 자꾸자꾸 내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도 진상규명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안 된다고 해서 힘들어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을 거예요.”

결국, 눈물이 났다. 어머니들은 마치 오랜 세월 힘들고 세찬 비바람에 시달리고 돌에 패이면서 단단해진 나무 같았다. 그리고 그 나무들이 언니, 언니 하며 서로를 어루만지며 숲을 이루는 것 같았다.

어머니들 앞에서 표나게 울면 안 되니까 얼른 화제를 돌렸다. 지난 2년여 세월을 돌아보며 제일 기억에 남거나 인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여쭈었다.

언제나 먼저 시원하게 말문을 터 주시는 윤민 어머니가 역시나 도와주셨다.

“도보행진 해서 팽목 갔던 거, 국민들이 손 흔들어주고 화합해줬던 것, 미국에 다녀왔던 일이 기억에 남는 큰일이에요.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 만난 게 제일 기억에 남지요. 여기 대구분들은 물론, 지금도 미국사람들까지 집회 같은 데서 만나면 언니하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내가 잃은 것도 많지만, ‘이 좋은 사람들을 만났구나, 이 사람들이 나한테 남았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거죠. 간담회 다니면서 그런 말 여러 번 했었는데, 내가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었다면 나도 이분들처럼 활동했을까, 아마 나는 그냥 다른 사람들이 당한 일이라면 이분들처럼 활동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런데 이 사람들은 나보다도 더 열심히 뛰어주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었구나, 이런 걸 많이 느껴요.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요.”

윤민 어머니 말에 예은 어머니, 예진 어머니 두 분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예진 어머니는 “2014년도에는 시민들이 박수쳐 주고 대접해줄 때마다 머쓱하고 불편했어요. 자식 잃은 내가 이러고 다녀도 되나 하는 자책. 그런데 언젠가 예은 언니가 ‘국민들이 해 주시는 건 나한테 해주는 게 아니라 예진이한테 해주는 거라고, 그러니 다 받으면 된다’고 말해줘서 크게 위로가 됐어요. 지금은 어디를 가도 먼저 박수 쳐주고, 힘내라고 해 주는 국민들이 제일 힘이 돼요”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쭈었다. 각자 ‘당신’을 정하고, 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 모두에게 들려달라고 했다.

▲ ‘명예 3학년’ 416교실의 풍경. 2016.1 [사진=참세상 정운 기자]

예은 어머니는 안산시민들에게 이야기했다 .

“저는 안산시민들이 위기를 기회로 삼는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합동분향소가 요즘 썰렁한 것 같아도, 한 주에 누적 인원으로 적게는 200명에서 500명씩 옵니다. 전국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와요.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는 문제는 이미 온 국민이 공감하고 있는 문제고, 전 세계가 결과를 주시하고 있는 일입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싸우고 버텨서 해결했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안산시민이 살기 힘들고 팍팍한 중에도 안산을 세월호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장소로 남겼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안산시민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것으로 기록에 남을 것이고, 이것은 영광이지 않겠냐고. 안산시민들이 꼭 그런 생각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추모공원을 세우려면 올해가 가기 전에 부지선정을 완료해야 한다. 가족들은 추모공원이라고 해서 추모하거나 슬퍼하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들이 쉬기도 하고 우리 사회 안전을 위한 여러 교육과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밖으로는 박근혜 게이트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 앞장서면서 안으로는 추모공원 건립에 힘을 쏟고 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빌며, 뭐라도 보탤 게 있다면 보태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윤민 어머니는 대학생들을 향해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생들은 세월호 참사 초기에는 움직이지를 않았잖아요. 세월호 세대라고 해봤자 오히려 중고생들이 움직였고, 대학생은 스펙 쌓기에 바빴고, 사실 침묵했어요. 그랬던 대학생들이 이번에는 이화여대부터 시작해서 시국선언도 하고,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게 고마워요. 한편으로는 우리 부모들은 하는 것마다 막혔었는데 이화여대 학생들이 이기는 걸 보면서,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번에 우리가 잘해서 박근혜를 끌어내리면 국민의 힘이 크게 발전하겠지요? 이겨 보는 경험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박근혜를 꼭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발로 내려오게 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국민들이 많이 모였을 때 무엇이든 하나라도 이루어 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걸 대학생들이 보여준 거지요.”

이어서 예진 어머니는 함께 활동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어디 가서 잘 못 하는 얘기인데, 오늘은 꼭 하고 싶어요. 우리 유가족들이 무슨 집회 있으면 ‘짠’하고 나타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안 그렇기도 해요. 아이를 잃은 250여 가족 중에 현재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부모는 50가족 정도가 다예요. 어찌 보면 늘 움직이는 가족들만 보여요. 다른 사안에 비하면 활동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 무서운 노란 옷 입고 가족들이 더 많이 뭉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이야기를 다른 가족들에게 꼭 하고 싶어요.”

어머니들은 이야기할 때마다 ‘정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맞장구를 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준비했던 질문을 다 마치고도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좋아했던 드라마와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 뽀샵을 잘해준다고 소문났던 사진관에 아이들이 몰려갔더라는 이야기, 아이들 사진을 보고 또 보니 이전에 미처 못 봤던 것들이 보인다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늘 열심히 활동하는 대구분들이 어머니들께는 자부심이기도 하다는 말씀, 대구에서 해 달라는 건 뭐든지 하려고 하는데 부족해서 미안하다는 말씀까지 하고 우리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녹취록을 풀면서, 글로 어머니들 말씀을 옮기면서 한 번씩은 꼭 콧등이 시큰하고 눈물이 났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싸워왔다. 그 비명과 눈물, 땀과 싸움이 오늘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치는 수백만 국민의 촛불로 타오르고 있다. 그중에 ‘부모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싸워 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걸음과 피눈물이 함께 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잊지 않겠다고 말했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은 이제 박근혜 게이트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으며,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든 개헌이 이루어지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일은 이후 우리가 만들 새로운 나라의 핵심과제다.

다시,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을 만나고 묻는다. 당신은 잊지 않았느냐고, 여전히 움직이고 있냐고, 진정으로 새로운 나라를 원하느냐고, 그래서 정말 스스로부터 달라지고 있느냐고, 어머니들이 스스로 견디는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서로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어깨가 되어주고 있냐고. 그래서 함께, 새날을 열고 있느냐고. 여기 광장에 모여 촛불로 선 사람들처럼. 깊게 패이고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단단하게 선 어머니들처럼.

▲12월 3일 박근혜 퇴진 대구시국대회에 등장한 세월호 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