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넘어 선 피울음의 언어, ‘성주가 평화다’ / 이명재

[서평] 의미 있는 설 선물, 시집 한 권

12:19

오늘은 기분 좋은 날입니다. 선물을 받은 날이거든요. 예사로운 선물이 아니에요. 책을 한 권 설 명절 선물로 받았습니다. 책도 보통 책이 아니에요. 시집입니다. 제목이 뭔지 아세요? <성주가 평화다>(도서출판 한티재, 2017년 1월 28일 출판).

눈치 빠른 분들은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겁니다. 표지 위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군요. ‘사드배치 철회 성주촛불투쟁, 200일 기념 시집’이라구요. 내용이 대충 짐작이 되지요? 200일 투쟁, 값진 행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이 시를 썼지만, 개인이 아닌, 언어를 조탁했지만 한 사건을 주제로 30여 편의 시가 독자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은이도 세 개 단체로 되어 있어요. 빛 된 이름들입니다. 사드 배치 문제가 아니었다면 함께 하기가 쉽지 않은 단체들입니다.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 ᆞ대구경북작가회의, ᆞ성주문학회 공동 지음으로 되어 있네요. 사람과 동떨어진, 사람을 구성원으로 하는 사회와 별개가 아닌 시를 쓰고 또 활동하려는 단체들임을 쉽게 알 수 있겠지요. 성주를 평화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 단체들.

시를 넘어 피울음의 언어들로…

여기에 실린 글들은 시(詩)를 넘어 있습니다. 차라리 ‘피울음’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 엘리엇(T. S. Eliot)은 시를 오류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지요. 그렇지만 보통 시를 정의할 때 ‘감정을 순화시켜 운율적 언어로 압축 표현한 것’쯤으로 말합니다.

<성주가 평화다>는 시를 다르게 봐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몰린 민초들의 절박한 삶, 강대국에 유린당하는 조국의 현실,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을 강요하는 정부, 중앙이 아닌 지방으로서 겪는 서러움…. 절박한 삶을 언어로 연결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주와 김천은 박근혜 정권과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배치하려는 사드 반대 투쟁을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성주 200일, 김천 160일. 해당 지역 주민들은 말할 것 없겠거니와 한반도 전체에 무익(無益)하다고 확신하면서 긴 투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성주가 평화다>에 실린 시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요. 첫째는 사드 배치 반대를 노래한다는 것, 둘째는 모두 성주 촛불집회 현장에서 낭송된 시라는 것.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특징이 있습니다. 성주 사랑이 곧 한반도 사랑이라고 노래한 격시(激詩)라는 것.

▲7월 25일 사드 배치 철회 성주 촛불문화제에서 김수상 시인이 시를 낭송하고 있다.

문학은 사랑의 산물, 시는 그것의 압축적 표현

문학은 사랑의 산물이어야 합니다. 증오의 표현이어서는 안 됩니다. 시는 그것을 아름다운 언어로 압축해 표현한 것이라고 하잖아요. 자유롭게 마음을, 유쾌하게 감성을…. 허나 여기 실린 시들은 결코 그러하지 않습니다. 무겁습니다. 왜일까요? 사드란 무기가 우리 삶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이곳에 이름을 올린 시인들의 면면은 전국으로 널리 알려진 문학인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명예를 좇기 위해 거들먹거리거나 사회적 지위를 탐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치열한 경쟁에서 혼자 살아남겠다는 속물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것, 그러자면 작은 것도 나누며 살자는 것, 약자들은 손을 맞잡을 때 힘이 된다는 것…. 사실 이것들은 예외 없이 문학에 적합한 소재들 아닙니까. 시의 좋은 주제들입니다. 이 시집은 이와 같은 시의 모음집입니다. 따라서 이 책 시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위대함’에 근접해 있는 사람들일 거예요.

딱 그만큼의 분량과 크기, 내용의 파격에 비해 형식의 틀은 지키려는 성의(?)를 보여주고 있군요. 흔한 장별 나눔이나 실려 있는 시의 사전 학습을 위한 글(평설)이 붙어있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갑니다. 뒤에 첨부된 단체와 사람들의 결의문, 성명서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으니까요.

시의 경향, 사드 배치 반대 유파?

한 사람이 쓴 시가 아니라는 것, 경향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시가 아니라는 것. 낭송된 날짜도 무시하고 그냥 시인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나누어 실었다는 것…. 하지만 여기 시인들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사드 배치 반대 유파라고 이름 붙이면 어떨까요.

여기 이름을 올린 시인들은 성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잘 아니까 사랑하게 되겠지요. 성주 출신 시인들이 많구요, 그곳 출신은 아니지만, 직간접적으로 연관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자연히 성주 관련 단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사랑을 덧칠해서.

성주 참외는 고유 브랜드이구요, 성밖숲은 성주에 산소를 제공해 주는 허파와도 같은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유가(儒家) 독립운동을 대표한 심산 선생도 이곳 출신이어서 읽는 이들조차 뿌듯함을 느끼게 합니다. 가천 막걸리도 성주 명물이구요, 이조년의 ‘이화월백(梨花月白)’은 꽃과 함께 한 그분의 13년 성주 삶을 반추케 합니다.

나라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때 국민은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되지요.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가만히 있으면 그건 죽음입니다(28쪽). 세월호 참사에서 확인했잖아요. 대자적(對自的)인 민초(民草)는 늘 의문점 가지고 문제를 숙고해야 합니다.

창조적 에네르기는 어디에서 오는 건가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운동은 창조적 에네르기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4만5천 성주 군민에게서 이런 기발한 안(案)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큼직한 것만 열거하면 이런 것들입니다. 백악관 위더피플 10만 서명운동, 새누리당 장례식, 광복절 815삭발식, 인간 띠 잇기, 1,151명 새누리당 탈당식, 미국 대사관 항의서한 전달 등.

이 시집에서 유일한 집단 창작품(성주 글쓰기 모임 ‘다정’)인 ‘이곳은 평화를 창조하는 드라마 세트장이다’는 성주 사드 투쟁 전부를 담고 있습니다. 200일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등장인물뿐 아니라 맡은 역할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의 대항마 동남청년단은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더군요.

성주 군민과 김천 시민 나아가 많은 국민들이 이렇게 절절하게 반대하고 있는데,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은 막무가내입니다. 국민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과 손잡고 사드를 일정에 맞춰 배치하겠다는 겁니다. 투쟁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지…. 사드 반대 투쟁이 이어질 수 있도록 힘 모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성주가 평화다’와 함께 하는 길은?

<성주가 평화다> 수입금 일정 부분은 성주 사드 반대 투쟁 기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은 성주, 김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반도 전체, 아니 나아가 세계 문제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MD전략을 조금만 이해해도 사드가 세계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투쟁의 기본 축을 보통 세 가지로 잡습니다. 사람과 재정, 전략을 듭니다. 세계 평화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결코 사드를 남의 일, 다른 지역 문제로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장에 많이 참석하고 또 여의치 않은 분들은 후원금으로 함께해 주시면 승리의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공동 시집이 나왔다는 건 드문 일입니다. 해방 정국에서 기쁨을 노래한 시들이 있었고, 4.19혁명의 감격을 읊은 시들은 있었지만, 한 지역에서 일어난 단일 사건을 두고 140여 쪽에 걸친 시집이 출판된 것은 드문 일입니다. 뒤집어 보면 사드 배치가 한 지역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체계적 투쟁에 박수를

투쟁기록실에서 제공한 사진 40여 장을 시집 앞부분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비록 흑백으로 인쇄한 사진이지만, 200일 간 이어 온 성주 투쟁의 빛과 그림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한시적 투쟁 조직에서 이만큼 꼼꼼하게 일 처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수고한 이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낭송한 시, 그 시를 시집 <성주가 평화다>에 올린 이름을 적기(摘記) 하면서 그들의 노고를 기리고 싶군요. 고희림, 권순진, 김수상, 김용락, 김윤현, 김태수, 노태맹, 박일환, 박희춘, 배창환, 변홍철, 신경섭, 이기숙, 이재승, 이창윤, 정동수, 조선남, 천보용, 최진 시인. 이들의 목소리는 괴물 사드를 물리치는 선(先)소리입니다.

성주 투쟁을 처음부터 이끌어 온 공동위원장 김충환은 ‘시집을 펴내며’라는 서문 끝에 ‘다시, 시(詩)가 모였다. 평화나비가 떼를 지어 날아간다. 다시, 세상 속으로.’라고 적고 있습니다. 세상 속으로 날아오는 평화나비와 함께 우리는 평화의 춤을 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사드 배치 반대는 곧 세계 평화 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