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동산병원에서] ④ ‘존버’하는 간호사들

한 달 간 대구동산병원에서 일한 간호사의 수기
"미안하다. 이 말을 처음부터 솔직히 해달라 이거에요"

20:56

[편집자주] 코로나19 최전선이 되어버린 대구에 자원해 3월 3일부터 31일까지 환자들을 돌보고 돌아간 김수련 간호사가 그간의 경험을 본인의 SNS에 올렸습니다. <뉴스민>은 김수련 간호사의 동의를 얻어 김 간호사의 경험기를 연재합니다.

[글쓴이주]저는 3월 초 서울에서 대구로 파견을 자원해 한 달간 일하고 돌아온 간호사입니다. 집이 낯설고 아무 일 없는 일상이 당황스럽습니다. 남겨두고 떠나온 다정하고 선량한 대구 분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모든 분들이 건강하길 바라요. 어떤 고난에도 여러분들이 삶이 온전하기를, 지극히 평안하기를 빕니다.

우려하시는 바와 달리, 밥은 잘 먹었습니다. 대구 전역에서 많은 분들께서 끼니마다 먹을거를 양껏 보내주셔서 더치커피도 마시고 따뜻한 삼계탕도 먹고 영양 가득한 도시락도 잘 챙겨 먹었습니다. 홍삼도 먹고 아로니아도 먹고 귤도 사과도 토마토도 먹고 하여간 먹는 건 고루 잘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먹은 것들은 시민분들의 우려와 걱정인 것을 잘 압니다. 꾸역꾸역 잘 챙겨먹고 보무도 씩씩하게 들어가 일도 걱실걱실 했습니다. 건강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매스컴에서 간호사들의 모습을 숱하게 보셨을 거예요. 방호복을 입거나 땀에 절었거나 얼굴에 뭘 덕지덕지 붙인. 그렇지만 간호사의 목소리를 들으신 적은 있으신가요.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가장 긴 시간 환자와 접촉하고 있고 매일같이 온갖 드라마들이 펼쳐지는데, 이상하게 간호사들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아요. 그저 그 겉모습만, 그 고생의 외양들만 눈에 띌 뿐 우리 목소리는 음소거 처리한 영상처럼 잘 들리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우리 얘기를 하고 싶어요. 속에 옹골차게 차오르지만 내뱉지 못한 간호사들의 이야기를요.

[대구동산병원에서] ① 간장에 조린 간호사들
[대구동산병원에서] ② 곡괭이를 든 간호사들
[대구동산병원에서] ③ 공공재가 된 간호사들
[대구동산병원에서] ⑤ 맨 앞에 선 간호사들
[대구동산병원에서] ⑥ 대구의 희망이었던 사람들

저는 여기서 제가 다른 사람을 돌보면, 그들이 또 저를 돌보는 보이지 않지만 아주 끈덕지고 질기기 짝이 없는 그물을 느낍니다. 여기서는 누군가가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립니다. 누군가 기쁘면 모두 기쁘고, 누군가 힘들면 모두 힘들어요. 저희는 그래서 집요하게 서로를 돌봐요.

예를 들면 끼니마다 다들 서로가 잘 먹는지 그렇게 꼼꼼하게 볼 수가 없어요. 타고나길 위가 크지 않아서 저는 밥을 머슴 밥처럼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에요. 제가 밥 먹는 모양이 영 마음에 안 드셨는지 여기 선생님들은 저를 잘 먹이려고 애를 쓰셨어요. 과자를 하나 집어도 초코바른 과자가 이토록 많은데 선생님은 왜 그걸 드시려고 하세요? 하는 이의제기가 단박에 들어왔지요.

아주 달콤한 간섭이에요. 제 입으로 들어가는 과자들보다 선생님들의 다정한 간섭들이 좋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덜 먹은 건 아니구요. 마주치는 사람마다 제 밥을 챙겨서 덜 먹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여기서 느낀 건, 밥은 아주 중요하다는 겁니다. 밥을 잘 챙겨먹어야 기분이 좋아지고, 힘든 일도 버틸 수 있어요. 누구를 돌볼 기운도 나를 돌볼 기운도 다 밥심에서 나오고, 밥은 세계를 구원합니다. 세계가 우울하거든 입에 밥을 넣으세요!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이번에는 밥 얘기를 하고 싶어요. 먹고 사는 얘기요. 명예가 아니라 씹고 넘길 수 있는 밥알과 그걸 사 올 월급에 대해서요.

▲코로나19 중증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경북대학교 간호사(뉴스민 자료사진)

어떤 숭고한 의지를 가지고 오신 분들도 삶은 현실이고 밥은 먹어야 해요. 많은 분들께서 ‘간호사들이 수당을 넉넉히 받는다더라’고 알고 계실거에요. 실제로는요, 제가 일했던 병원에 본래 일하고 계셨던 간호사 선생님들 중 그 돈 구경을 해 본 사람이 없습니다. 저도 아직 못했어요.

저는 예외적인 존재입니다. 저는 돌아갈 곳이 있고, 제 병원에서는 저를 공가로 해 줘서 월급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여기 계신 어떤 분들은 사정이 달라요. 이 병원은 거점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간호사들에게 ‘절대 강제로 동원하지 않겠다’, ‘만약 자원한다면 월급을 두 배로 지급하겠다’라고 했어요. 지금 상황은? 동원은 하고 있는데, 월급 두 배 얘기는 쏙 들어갔어요.

이분들의 월급은 기존 월급이랑 비슷하게 지급됐지만 수당은 없어요. 야간근무 수당 같은거요. 대구시 상황실에서는 병원에 이미 수당을 지급했다고 해요. 병원은 금시초문이라고 하고요. 돈을 아주 많이 달라,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차라리 이럴 것이었으면 그런 말을 하지 말던가, 변경사항이 있다면 공지를 하고 양해를 구해달라는 말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너희가 희생해야 할 것 같아. 비상상황이라 어쩔수 없다. 돈은 많이 주기가 힘들어. 미안하다. 이 말을 처음부터 솔직히 해달라 이거에요.

미안하다.

이 말을 해달라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혹시나 들고일어날까봐, 그만둘까봐, 이것들을 방패로 써먹기가 힘들까봐, 안절부절 숨기지 마시고요. 문제가 터지면요. 간호사들은 그냥 다 뛰어 들어가요. 우리의 위치가 방패고 발걸레인 걸 알아도 일단은 다들 합니다. 버텨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게 우리인거죠. 우리의 일이 빛나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그래요.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소중한 발걸레란 말이에요. 우리는 대단히 필수적인 발걸레라구요. 우리가 없으면 모두가 위험하기 때문에 발걸레든 방패든 뭐든 일단 버티는 사람들에게 그냥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그렇게 과한 요구인가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는 ‘의료인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야지 돈을 바라다니 탐욕스럽다’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현장에서도 ‘돈 관련된 얘기를 하다니 추잡스럽다’고 하신 분도 계셨어요.

하지만 사명감은 위험합니다. 고고한 신념, 숭고한 명예로만 일을 하면 사람은 바라게 돼요. 내가 이토록 중요한 희생을 하니 그만한 경외를 바라게 된다고요. 그런 경외를 받지 못하면, 사명은 쉽게 빛이 바래게 됩니다. 그러면 그만두게 되고요. 아닌 사람도 물론 있지만 그런 성인 같은 자세를 모든 간호사에게 바란다면 여러분들은 본인 삶을 먼저 돌아보셔야 해요. 간호사는 사람이고요. 이게 사람의 지난한 본성이에요.

자원한 타병원 사람들은 2주에서 한 달이 지나면 자기들 병원으로 돌아가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어요. 잠깐이니까요. 인생의 한 달이야 뭐 이렇든 저렇든 죽지만 않으면 된 거 아닙니까. 돌아갈 곳이 있잖아요?

하지만 이 병원에 남아 이 모든 사태가 끝날 때까지 견디고 지켜야 하는 사람들은 본래 이곳의 주인이었던 이 병원의 직원분들이십니다. 그분들의 삶을, 그분들의 모든 일이 끝나기까지 찬사와 꽃길로 지켜주실 자신이 있으세요? 코로나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고, 확진자가 늘지 않아도 이분들은 위험한 환자들을 위해 쉬지도 못하고 보호복을 입어야 하는데요.

이미 꽃도 피고 날도 따스하고 견디기 힘드니 다 나와서 놀고 돌아다니시잖아요. 이분들은 꽃이 펴도 마음이 시려 핀 줄도 모르고 땀이 온몸을 적실만큼 더워 탈수가 오는데요. 견디기 힘들어도 견뎌야 하는데요. 그래요 그럴 수 있죠. 사람은 그럴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러면서 이분들을 전력으로 응원하신다고요? 아닐걸요.

이미 제가 여기 왔던 3월 초에 비해 지원이 눈에 띄게 줄고 있어요. 이제 그분들이 견뎌낼 지구력을 주는 것은 하루하루 먹는 밥과 내가 챙기고 나를 챙기는 동료들과 때 되면 나오는 월급이에요. 아무 잘못 없이 오롯이 뒤집어써야 하는 위험입니다. 본인이 월급 주실 거 아니면, 그분들이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는 일이 견디기 위해 하는 일임을 이해해주세요.

그분들의 입에 따뜻한 밥을 한술, 한그릇, 한솥 퍼 넣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환자분들이 괴로우면 우리가 괴롭듯이, 그들의 죽음이 우리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듯이, 내 옆에 선 간호사들, 대구에 버티고 선 간호사들의 위치가 흔들리면 우리 모두가 흔들립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믿을 수 없지만 우린 정말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어요.
그래서 말이에요. 우리 그 분들의 입에 밥을 좀 가득 넣어드려요.
성공적으로 버티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