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오리발 지방의회와 직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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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윤리가 실종된 현장을 취재했다. 최근 대구 중구의회에선 구의원이 차명회사를 통해 중구청과 수의계약을 맺은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졌다. 차명회사에 아들이 근무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가 시작되자 구의원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기자의 취재에도, 의혹을 제기한 시민단체에도 오리발을 내밀었다.

논란의 결과가 정치혐오로 이어지지 않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없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취재 과정에 만나는 현장 중 직업윤리에 대한 고민이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야는 단연 ‘정치’다. 지방의회의 전문성 부족, 겸직 논란, 연수 보고서 베끼기가 지역 언론의 단골 아이템이라는 게 그 방증이다. 매년 반복적으로 지적됨에도 개선되지 않는 건 정치인의 직업윤리와 바뀌지 않는 시스템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중구를 담당하며 쓴 기사를 돌아보니 예산, 조례, 정책에 대한 것보다 고소‧고발전이 더 많다. 한 명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중구의회 구의원은 여섯 명뿐이다. 이들이 지역을 위해 일하기 보다 서로 헐뜯고 밀어내는 데 시간을 보낸다면 대체 기자는 무엇을 보도해야 하는지 내내 고민이 됐다. 동료 기자들도, 구민들도 피로감을 이야기했다. 적체된 실망감은 정치인의 직업윤리 같은 원론적인 논의조차 실종시켰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두고 해당 구의원의 징계를 결정하는 건 동료 의원들이다. 지방자치법 제44조는 공익의 우선, 청렴과 품위의 유지, 지위 남용에 의한 재산상의 이익 취득이나 알선 금지 등을 지방의회의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의회는 윤리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해당 구성원을 의결로 징계할 수 있다.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대구에선 비판과 성찰, 시민 눈높이에 맞는 징계까지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행정부를 감시하는 의회도 투명한 업무추진을 위해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스템 변화는 더디니 정치인 개개인의 직업윤리를 계속 물을 수 밖에 없다. 7일 오전 중구의회는 임시회를 열어 차명회사를 만든 배태숙 의원에게 30일 출석정지를 결정했다. 이보다 앞서 윤리특별위원회는 제명을 결정했지만, 그보다 낮은 수위로 징계가 결정된 것이다. 의회 안에서 혹은 밖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모르지만 구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결과인 건 분명하다. 찾아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정치인의 직업윤리란 무엇인가’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