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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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새로 운영하는 #053/054 코너는 <뉴스민> 기자들의 주장과 생각, 취재 뒷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칼럼 코너입니다.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들과 만나기 위한 <뉴스민>의 한 방편입니다.

다른 날보다 늑장을 부렸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눈만 끔벅였다. 사전투표는 진즉에 마쳤다. 다른 일거리가 있긴 했지만 그리 바쁜 건 아니었다. 선거날이지만, 오늘은 잠시 이래도 된다고 마음먹기로 했다. 그렇다고 무한정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동생 출근길 운전기사 노릇을 해야 했다.

대략 한 달 전부터 같이 출근한 동생은 오늘도 출근했다. 법으로 정한 공휴일이지만 동생이 다니는 회사는 쉬지 않는다. 주4일제를 공약한 이가 후보로 나섰지만, 그가 당선된다고 해도 동생은 5년 뒤 선거날에도 아마 쉬지 못할 거다.

동생을 출근시키고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고, 미용실에 들렀다. 선거 보도, 기획 보도를 이어가느라 머리 자를 시점을 2주나 놓쳤다. 지저분하게 뻗친 머리를 잘라냈다. 그러고 보니 이곳도 오늘 쉬지 않았다. 지난 월요일(7일), 대선일 영업 여부를 물었을 때, 전화기 너머에선 “네, 저희는 화요일에 쉬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더랬다. 오늘은 법정 공휴일이 아니라, 수요일인 셈이다.

몇 년째 머리를 맡겨온 디자이너 선생님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인 이들은 코로나19 시기를 자체 방역으로 헤쳐오고 있다. 선생님은 이틀 전 퇴근하며 뿌려놓은 소독약이 쉽게 날아가지 않아 두 번이나 밀대질을 했다고 투덜댔다. 정부가 방역물품 지원금을 일부 지급하고 있지만, 그것이 충분한지 묻진 못했다. 말해 무얼 할까, 넘겨 짚기로했다.

머리를 자르고 역시 쉬지 않는 카페를 찾아 들어와 노트북을 켰다. 다음주 월요일 ‘#053/054’ 순번이 돌아온다. 무엇을 쓸까 고민을 하다 손 가는 대로 여기까지 써내렸다. 아마도 이르면 잠시 후 저녁 7시 30분이면 앞으로 5년을 책임질 대통령의 윤곽이 드러날 거다. 2002년 16대 대선부터 도입된 방송 3사 출구조사는 대체로 정확하게 당선자를 맞춰왔다.

1, 2등 격차가 3.6%p 차이에 불과했던 2012년 대선도 출구조사는 1.2%p로 박근혜 후보가 앞서는 걸로 예측했다. 다만 최종 결과가 확정된 건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초박빙으로 진행되는 이번에도 비슷한 시간대에 최종 당선자가 확정될 걸로 예측된다. 글을 쓰는 현재 시점에선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누가되든 상관없이 내가 대통령에게 바라는 건 동일하다.

▲3월 10일 새벽, 당선이 확정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새 대통령은 형광등 100개의 빛을 발하는 사람이 아니라, 빚을 안고 5년을 살아내는 사람이길 바란다. 2020년 2월 이후 전 세계에 광풍처럼 몰아친 감염병 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기준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낡은 기준에 천착한 시스템은 감염병을 예방하지도, 대응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일깨웠다. 내 이웃의 건강과 삶을 담보 삼은 깨달음이다. 새 대통령은 이웃들의 희생에 빚진 마음으로 5년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 빚진 마음으로 낡은 기준을 몰아내고 새로운 기준을 세워내는데 앞장서길 바란다.

낡은 기준이란 이런거다. 회사가 작고 여유가 없으면 법정 공휴일이라도 쉬는 건 언감생심인 것. 자영업자들은 감염병 위기가 닥쳐도 개인기로 이겨내도록 하는 것. 약한 곳을 약한 채로 그냥 버려두는 것. 결국 또 다른 위기가 도래하면 다시 그들의 희생을 발판삼는 것. 누구일지 모를 대통령에게.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