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낯선 공존, ‘쥬라기 월드:도미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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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은 동경과 공포의 대상이다. 인류 이전 지구를 지배한 미지의 존재이며 인간이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인 생물이다. 이런 공룡을 되살린다는 발상은 매우 매력적이다. 호박에서 추출한 공룡 DNA를 통해 복원해낸 상상 속 공룡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보는 일은 즐겁고 짜릿하다.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두 발로 일어서서 포효할 때를 잊지 못하고, 벨로시랩터가 문을 여는 장면과 티라노사우루스를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모두 숨을 멈추며 손에 땀을 쥐었다. 1993년 개봉한 <쥬라기 공원>에 열광한 까닭이다.

<쥬라기 시리즈> 통틀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쥬라기 공원>은 제작비 6,300만 달러로 전 세계 10억 2,900만 달러의 흥행 성과를 냈다. <쥬라기 공원>은 개봉 당시 공룡에 대한 대중 인지도와 관심을 이끌어내 한동안 공룡 붐이 일었다. 인기에 힘입어 속편 <쥬라기 공원:잃어버린 세계>와 <쥬라기 공원3>이 개봉했다. 전작에 비해 규모가 커지고 등장하는 공룡의 종류도 많아졌지만, 화면 연출에서 전작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부진한 실적 탓에 속편 제작이 무효화되고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다.

15년 만에 <쥬라기 월드>라는 이름을 달고 공룡 테마파크가 개장했다. 1편이 개봉한 지 22년 만이다. 영화에는 육·해·공을 망라하는 다양한 공룡들이 가득하다. 몸 크기가 20m에 달하는 수중 공룡 모사사우루스가 인상적으로 등장했다. 관객들은 테마파크를 돌아다니는 자크 미첼(닉 로빈슨)과 그레이 미첼(타이 심킨스)을 따라 마치 쥬라기 월드를 여행하는 듯한 연출이 강점이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어떤 파멸을 낳는지 나타내려는 강박 때문인지 사고를 자초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억지스럽다. 공룡의 탈주에 대비하지 못하고 영리하지 못한 대처를 하며, 심지어 하지 않아도 될 실수를 저지르는 게 작위적이다. 열 감지를 하고 위장술을 쓰는 유전자 조작 공룡이 마구잡이로 살생을 즐기는 행태 역시 의도적이라서 부자연스럽다. 오직 공룡 조련사 오웬 그레디(크리스 프랫)만 위기를 감지하고 영리하게 대처한다.

영화 내내 강조하는 ‘공룡은 우리의 친구’라는 메시지는 감동보다는 어색한 느낌이다. 특히 위협적인 맹수로 묘사된 공룡들이 방어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장면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생존을 위해 정면승부를 최대한 피하는, 일반적인 동물의 행동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인도미누스 렉스가 등장인물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주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인도미누스 렉스에 맞서는 장면과 벨로시랩터들이 협공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인간을 구해주고 함께 싸웠다고 교감의 눈빛을 보내는 장면은 유치하기까지 하다.

3년 뒤 개봉한 <쥬라기 월드:폴른 킹덤>은 사람들이 모두 철수하고 공룡들의 왕국이 된 이슬라누블라섬에서 화산이 터지고 공룡 구조 작업을 펼치는 게 골자다. 공룡이 멸종할 위기에서 공룡보호연대를 설립하고 활동 중인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를 비춘다. 그는 전편에서 쥬라기 월드 이노베이션 센터 책임자였다. 클레어는 오웬에게 동행을 부탁한다. 화산이 폭발하는 섬에서 탈출하는 전반부는 재난영화 특유의 긴장감과 박진감이 흐른다.

공룡 구조 작업에 숨겨진 음모가 드러나는 후반부에선 전작의 오마주를 과하게 담아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쥬라기 시리즈>는 뼈대가 공룡이 있는 놀이공원에 놀러 왔다가 육식공룡의 공격으로 위험에 빠지고 용감한 일부 사람과 공룡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플롯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규모가 커졌고, 현대화되었고, 새로운 종류의 공룡이 등장해도, 실망감만 줬다.

29년에 걸친 <쥬라기 시리즈>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쥬라기 월드:도미니언>은 뼈대가 전작들과 비슷하다. 섬에서 탈출한 공룡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바다에선 해룡이, 하늘에선 익룡이 인간을 위협한다. 인류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인류와 공룡의 사투에서 갑자기 유전자 복제로 선회한다. 때문에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대형 메뚜기 떼의 출몰문제 해결을 위해 생명공학업체 바이오신을 쫓는 엘리 새틀러 박사(로라 던)와 앨런 그랜트 박사(샘 닐)의 이야기와 유전자 복제로 태어난 메이지(이저벨라 서먼)를 납치한 밀렵꾼을 추격하는 오웬과 클레어의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바이오신으로 연결된다. 영화는 크리처물에서 첩보 액션물로 바뀌었다가 또 다시 어드벤처물로 변한다. 전작들과 엇비슷한 느낌은 달라지지 않는다. 유전공학에 숨겨진 음모와 인간을 사이에 둔 공룡 간 사투, 공룡에게 잡아먹히는 악당의 최후라는 플롯은 고착화됐고 과학을 과신한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도 공식처럼 나열된다. 마지막편은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설파하지만, 낯설게 느껴진다. 여러 장르가 뒤섞인 탓인지, 인간과 공룡이 한 시대에 살아간다는 게 어색한 건지 뚜렷하지 않다. 분명한 건 한 편의 영화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 주제의식이 옅다는 점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