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황무지] ➀-1. 발달장애인 부모 앞에 놓인 선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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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에 사는 차승현씨는 아이의 자폐성 발달 장애를 알게 된 후, 돌아가신 남편과 함께 펑펑 울었다. 그 이후, 아이를 위해 생활하며 극심한 공황 장애를 겪기도 하였다. 장애인들의 자립 생활을 위한 환경이 마련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아이가 생활하던 시설이 폐쇄되고 난 후, 차승현씨는 다시 반복될 생활에 걱정이 많다.

Q. 아이가 자폐성 발달장애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됐나요?

커가면서 이제 조금씩 행동이 이상하고, 아예 말문도 안 트이고 막 그러니까.
그리고 또 이제 친구들 오면 같이 어울려 놀지를 않고, 그냥 방에 들어가서, 혼자서 침대 밑에 기어 들어가고, 커튼 뒤에 숨고…

10개의 항목 중에 3개 이상 되면 자폐 소견이 있다는 거예요. 근데 (검사를) 하니까 아홉 개가 다 포함되는 거야 그래가지고 막 펑펑 울었거든요. 그때, 남편 살아있을 땐데, 같이 막 울었어요.

Q. 장애를 알게 된 이후의 생활은 어땠나요? 

거의 한 달 생활비를 애한테 전부 다 교육에 다 넣는 거예요. 서울에서 자폐아인데, 변호사가 된 사람 있었어요, 처음으로. 고치면 되는 줄 알았어요.

이제 그때는 대구대 재활과학대가 있잖아요. (그래서) 대구로 이사를 갔어요. 그때는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오직 애한테만 내가 올인을 다 하는 거죠. 애를 내가 전부 다 데리고 다녀야 되고, 그때는 활동 보조 이런 것도 없었고, 기환이는 잘만 하면, 내가 정상인으로 키울 수 있다. 이제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었죠.)

공황장애라고 있잖아요. 남편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내를 떠났는데 나도 어느 순간에 내가 떠나면 남아있는 애들은, 그것도 또 기환이는 장애아인데…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러면서 아주 극심한 공황발작을 일으켰어요, 제가.

Q. 아이를 시설로 보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전에는 학교라는 게 있었고, 기한이가 나가서도 학교에서 사회생활도 했고, 우유 배달도 했고, 학교 선생님들도 기한이를 너무 좋아했고 그렇게 했는데 이제 그게 안 되니까 그러면 시설을 보내야 되겠다. 아무 데도 안 가려고 그러고 집에만 있고, 저는 또 제 나름대로 또 사회생활을 해야 되고,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저도 경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만나고 그런 게 있어야 될 거잖아요. 어느 정도 한계가 오는 거예요.

하루 종일 기환이만 케어를 못 하잖아요. 이제는 얘도 살고, 나도 살아야 되겠다. 제가 그렇게 바랬지마는 과연 이게 정답일까?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그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제 스스로가.

이렇게 시설에 안 보내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24시간 보호 체제가 있다면, 아니면 그룹홈이 있다든지 사회와 연계성을 이어가면서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죽 힘들었으면 거기(시설)에 보냈는데, 애도 거기에 적응 다 됐고, (그런데) 다시 집으로 온다는 거는 또 그게 (힘든 생활이) 반복되는 거잖아요.

기사보기=[탈시설, 황무지] ① ‘기환이 엄마’ 앞에 놓인 선택지

촬영 = 박중엽 기자
편집 = 여종찬, 박찬승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