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셀코리아 노조가 천막 농성장을 지키는 까닭

외투기업 먹튀 불안감 늘 존재
전 직원 희망퇴직 신청서 제출
노조 있었단 이유로 재취업 어려워
외투기업 데려온 영천시청이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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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인 낮 12시 30분 영천시청 정문, 은행 옆 골목, 시청사거리 코너마다 한두 명씩 서 있던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경주지부 다이셀세이프시스템즈코리아(이하 다이셀) 조합원들이 벤치로 모였다. 손에는 ‘일본기업에 노동자 팔아먹은 영천시는 책임져라’,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1호 일본 기업 다이셀 유치, 10년 뒤 자본 먹튀 책임져라’ 같은 문구가 쓰인 피켓과 현수막이 들렸다. 이날(8일)은 시청 앞 선전전을 펼친 지 29일 차, 열댓 명의 조합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인사를 나누다 흩어졌다.

▲다이셀노조 조합원들은 폐업 통보 직후부터 평일 오전 11시 40분부터 한 시간 가량 영천시청 앞에서 재발 방지와 고용책임 등의 요구사항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선전전을 하고 있다.

다시 모인 건 다이셀코리아 정문 앞 천막에서였다. 열 명이 넘던 인원은 넷으로 줄었다. 더 더워지기 전에 발전기를 끌어오자는 이야기에 누군가 ‘그전에 정리해야지’라며 큰 목소리로 핀잔을 주자 다 함께 웃음이 터졌다.

“낮에는 지회장과 부지회장, 사무장이 주로 지키고 야간에는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지키고 있습니다. 53명의 조합원 전부는 아니어도 마음과 시간을 내는 여러 명이 있어서 힘내서 (천막을) 지키고 있어요”라며 정민욱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경주지부 다이셀 지회장이 입을 열었다.

외투기업 먹튀 불안감 늘 존재
전 직원 희망퇴직 신청서 제출

다이셀은 경북 영천 금호읍 채신공단에 있는 차량용 에어백 제조회사로, 지난 5월 실적 악화를 이유로 일방적 폐업 통보를 했다. 회사가 문을 닫기로 정한 날짜는 지자체로부터 약속받은 공장부지 무상임대 기간 만료를 단 몇 개월 앞둔 6월 30일이다. (관련 기사=외투기업 다이셀코리아, 무상임대 끝나는 시점에 일방적 폐업 논란(22.05.11))

신호는 계속 있었다. 회사가 미래에 투자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구개발에 돈을 쓰지 않거나 통상 10년 차 정도 되는 현장 경험자가 맡는 관리직에 20대를 뽑아 넣는 점들이 그랬다. ‘이 회사가 제로포인트(수익도 손실도 나지 않는 상황)를 유지하다가 무상임대 끝나면 사업을 접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불안감이 전 직원 사이에는 공기처럼 존재했다.

▲노조가 회사 앞에 천막을 친 건 마지막까지 회사가 약속한 내용을 지키는지, 상여금 소송 등 진행 중인 소송에 협조적으로 나오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노조는 지난 5월 3일 노사간담회를 하겠다고 회사가 불러들일 때도 당장 폐업을 할 거라곤 생각 못했다. 기껏해야 5월 말까지로 예정한 휴업 기간을 더 연장하거나 일부 신청자에 한해 희망퇴직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회사는 6월 30일부로 폐업하겠다는 계획을 통보했다.

“다들 예상보다 폐업시기가 빠른 것에 놀라긴 했지만 생각보다 덤덤했어요. 직원들뿐만 아니라 영천 시내의 일반 시민들도 아무렇지 않게 ‘10년 뒤에 혜택이 끝나면 다이셀은 철수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회사가 이렇게 폐업을 공식적으로 통보하기 전에 직원들이나 노조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회사는 잡아떼면 그만이니까요. 저희도 그사이 있었던 한국게이츠, 한국산연 등 비슷한 사례를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긴 해요”

회사는 폐업을 통보하고 곧바로 전 사원에게 희망퇴직 시행공지 안내문을 돌렸다. 법정퇴직급여와 희망퇴직위로금을 걸며 문서는 ‘회사는 2013년 생산개시 이후 수익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큰 누적손실을 안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경영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시책 및 검토를 실시해 왔습니다만, 향후에도 이러한 누적적자의 해소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어 불가피하게 폐업이 결정되었습니다’라고 적었다.

노조는 확실하게 폐업이 결정됐다고 판단한 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결정했다. 정진욱 지회장과 김애리 사무장은 다른 조합원들이 모두 썼는지 확인한 뒤 마감기한인 5월 31일 오후 3시 직전, 마감 30분을 앞두고 가장 마지막에 희망퇴직 신청서를 썼다.

노조 있었단 이유로 재취업 어려워
외투기업 데려온 영천시청이 책임져야

노조가 영천시청에 요구하는 건 직원들의 재취업과 외투자본 먹튀 방지 제도 마련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영천 내 공장에선 다이셀에서 일했다고 하면 노조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주지 않아요. 실제 그런 사례가 나오고 있고요. 영천시청 앞에서 매일 점심시간에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하는 이유기도 해요. 영천시에서 세금으로 온갖 특혜를 주고 데려왔으면 자본이 먹튀한 뒤 남은 직원들의 재취업까지 책임져야죠. 저희의 1번 요구사항은 그거예요”

영천시는 5월 말 다이셀의 폐업 통보로 실직 위기에 처한 지역 근로자 130여 명에 대한 일자리대책 마련을 위해 테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노조는 영천시에서 뚜렷한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대부분 3~7년 정도 재직을 했어요. 10년 다닌 직원도 2명이에요. 전 직원 133명 중 80여 명 정도가 영천시민이에요. 그 가족들까지 하면 영천시 입장에서도 적은 수가 아니죠. 이들이 어쨌든 영천 안에서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하잖아요. 40대 초반 밑의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좀 나아요. 그 위 50대 초반이나 중반 정도 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직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공공형 일자리든 뭐든 영천시가 나서줘야 하는 거죠.”

다이셀코리아에서 10년을 근무한 이현정(가명) 씨는 노조가 있기 전과 후의 근무환경이 많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노조가 없을 땐 현장직군이 관리직 눈치를 많이 봤어요.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연차도 원할 때 쓸 수 없었어요. 그런데 노조가 생기고 교육을 받거나 이것저것 주워듣게 되면서 그게 당연한 요구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따지고 들면서 근무환경이 많이 좋아졌어요”라고 말했다.

평일 오후임에도 회사 안은 고요했다. 경리팀 직원과 남은 자재를 정리하거나 폐화약을 관리하는 직원 한두 명이 간간이 늦은 출근을 했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과 지회장이 가볍게 목례를 했다. 회사 입구 바로 앞에 자리한 천막 안에선 대화 사이 웃음소리가 흘렀다. 그 중간을 비집고 사무장이 중고거래로 사 온 아프리카 타악기 봉고를 치는 소리도 삐져나왔다.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는 ‘외국인투자촉진법 일부 개정법안 발의’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개정안에는 노동자의 고용안정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을 때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같은 날 국회 소통관에서는 ‘외국인투자촉진법 일부 개정법안 발의’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류호정 의원은 “일부 외투기업은 더 큰 이윤을 위해 일방적인 폐업과 대량 해고, 노조탄압 등을 자행하고 있다. 기술탈취와 먹튀 행각은 물론 부동산 투기까지 벌인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노동자의 고용안정에 현저히 지장을 줄 우려가 있을 때는 외국인투자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외투기업이 거짓 등 부정한 방법으로 토지 등의 임대료를 감면받았다면 감면받은 임대료 전부나 일부에 대해 반환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기획재정부 장관·중앙행정기관장·지방자치단체장에게 주는 조항을 신설했다. 아울러 감면받은 임대료의 최대 2배를 추가로 징수할 수 있는 징벌 조항을 만들었다.

인터뷰 말미, 회사 정문 앞에 선 정민욱 지회장은 “1만 2,000여 평의 부지엔 또 다른 공장이 들어오겠죠. 다시 외투기업이 들어올 수도 있고요. 우리가 잘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끝나는 사례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이셀은 부지도 무상으로 사용하고 기계도 관세 없이 들여와서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고 일본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잖아요. 결국 남는 건 사람뿐이에요”라고 말했다. 공장 안에서 때 탄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